최태원 "美 보조금 없다면 현지 반도체 투자 다시 생각해봐야"

美 인디애나 5.2조 투자 발표했지만
SK이노 합병은 AI에너지 대응위한 것
"대한민국 세금 체계 진화해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9일 제주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상공회의소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최근 재계의 화두로 떠오른 '트럼프 리스크'와 관련해 "만약 미국이 내년에 반도체 보조금을 줄 수 없다고 결정한다면 우리도 투자 여부를 완전히 다시 생각해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오는 2028년 가동을 목표로 미국 애리조나에 38억7000만달러(약 5조2000억원)를 투자해 첨단 패키징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 규모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최 회장은 19일 제주도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선 후보가 외국 기업에 지급하는 보조금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는 질문에 대답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인공지능(AI) 시장을 선도하는 미국이 기존의 반도체 정책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본다"면서도 "우리도 미국 인디애나 투자가 아직 완전히 결정된 것은 아니고 절대적 투자 규모가 크지도 않아 최종 대답은 내년에 미국 정부가 들어선 뒤에나 가능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자국 내에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기존 계획을 완전히 포기할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앞세워 'AI 밸류체인' 내 강자로 자리잡은 SK가 굳이 투자를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최 회장은 다만 우리 정부를 상대로는 반도체 지원 프로그램이 시급하게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반도체 기술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전세계가 반도체 공급물량을 늘리기 위한 시설투자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현재 팹(공장) 하나를 짓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20조 원에 이른다"며 "기업이 과거처럼 '혼자 알아서 잘 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지경이라 정부의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한 세액공제(세금감면)나 2조 원 안팎으로 한정된 정책대출로는 경쟁에서 이겨내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최근 재계의 관심을 모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에 대한 배경설명도 내놨다. 그는 "배터리산업에서 캐즘(일시적 수요 부진)이 생긴 현실을 인정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이 산업을 관둘 수는 없다"며 "지금 주춤하는 모습은 있더라도 미래 성장성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그 시기까지 사업을 잘 돌아가게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9일 제주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상공회의소

다만 두 회사의 합병 자체는 본질적으로 배터리 캐즘과 무관하게 추진된 것이라는 게 최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SK 그룹의) 에너지 회사들이 다시 뭉치는 것은 AI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며 "AI산업에 투입되는 막대한 에너지를 한 회사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너지를 내기 위해 합병을 추진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날 앞서 열린 강연에서 2028년이 되면 AI 데이터 센터에 쓰이는 전력량이 지금보다 8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우리 정부와 정치권을 대상으로는 세금 체계가 진화해야 한다는 쓴소리도 던졌다. 우리 세금 체계는 기업의 사정이나 여건을 따지지 않고 너무 일률적으로 설계돼 있어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게 최 회장의 지적이다.


그는 "상속세 최고세율이 현재 할증까지 얹어 60%인데 이걸 40%로 내린다고 해서 정답이 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가령 어떤 기업이 '내가 경영을 잘해서 5년만 유예해주시면 이후 주가를 올려서 주식의 일부를 팔아 내겠습니다'라고 한다거나 '나는 경영능력이 없으니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물려받은 주식의 50%를 현금 대신 물납하겠습니다'라고 한다면 이것이 나쁜 것이냐"라고 말했다. 기업의 상황에 따라 납부방법과 시기 등을 유연하게 조절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이같은 조정방안이 없다보니 대다수 기업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다.


최 회장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우리 세금 체계도 디테일을 살려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상의 차원에서 우리나라 AI 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건의도 내놓기로 했다.


그는 "한국의 AI 인프라가 더 구축되지 않으면 빅테크 등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우리가 공동화 또는 종속화될 우려가 있다"며 "AI 산업 내에서 반드시 엔지니어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AI를 이해하고 이 안에서 사고하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 'AI 워리어(전사)'를 키워내기 위해 국가적인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어 "SK하이닉스에 변호사 출신 인재를 한 명 보내놨는데 반도체 공부를 열심히 하더니 나중에는 왠만한 엔지니어보다 더 전문가가 되더라"며 "문이과 하는 구분을 나누지 말고 초등학교 때부터 AI 훈련을 받을 수 있게 지금부터 씨를 뿌릴 수 있는 교육 시스템으 만들자"고 제언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