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국회(21대)도 어려웠지만 이번 국회에서는 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단 정치권 싸움이 끝나야 과학기술계 지원책들을 건의라도 해볼 수 있을 텐데 그게 언제쯤일까요?”
최근 만난 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전문 기관의 고위 관계자는 기관 현안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같이 토로했다. 기관의 혁신을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인데 정쟁 현안이 많다 보니 당분간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릴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으로 분리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과방위는 22대 국회가 5월 30일 개원한 뒤 전체 상임위 중 가장 많은 7회의 전체회의를 열었지만 ‘호통’과 정쟁 외에 사실상 성과가 전무하다. 매 회의 때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위원들이 ‘방송4법’, 방송통신위원장 논란 등 방송통신 관련 이슈를 꺼내들면서 번갈아 호통을 친다. 그러면 여당인 국민의힘 위원들이 이에 반박하며 고성을 쏟아낸다. 뻔한 정치권 싸움이 과방위의 일상이 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과학기술 관련 입법은 제대로 언급조차 이뤄지지 못한다. 차기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지명된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을 둘러싼 갈등으로 당분간 과방위의 ‘정상 운영’ 가능성은 기대할 수 없을 듯하다.
과학기술 관련 지원 법안들이 뒷전으로 밀린 탓에 과학기술계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여야 싸움에 밀려 21대 국회에서 결국 폐기돼버린 ‘인공지능(AI) 기본법’ 제정안이 대표적이다. 전 세계 각국이 AI 기술 선점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펴고 있고 국내에서도 정부와 기업·정치권 가릴 것 없이 첨단기술 산업의 발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상당수 지원책들은 국회에 막혀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 관련 이슈들이 그 자체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시간을 들여 검토하는 게 맞겠지만 지금 사정은 방송통신 이슈에 밀린 탓이라는 게 문제다.
과방위 소관인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터져나오는 이유다. 기업계 인사인 하정우 네이버AI이노베이션 센터장은 공개 석상에서 “과방위를 분리해주면 좋겠다”고 발언했을 정도다. 한 과학계 인사는 “상임위를 나누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안다.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은 과방위원들 스스로가 지금의 과방위 운영의 문제점을 생각해달라는 호소에 가까운 것”이라고 답답한 마음을 전했다. 우리나라가 생존할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것은 국가 전체의 일 중 가장 앞서 생각해야 할 일이다. 과학기술이 정쟁의 볼모로 잡히는 상황은 이제 끝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