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선수법] "제조물책임법 개정안 논의, 냉철하게 되짚어봐야"

■김익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김익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국민적 관심을 받은 강릉 사고와 관련한 이른바 ‘도현이법’ 입법청원이 9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서 제조물 책임법 개정 논의가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고도의 첨단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이같은 흐름에 맞춰 제조물 책임법을 정비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향으로 개정 논의를 급발진시키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냉철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여러 국회의원들이 경쟁하듯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있다.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공통적으로 입증책임을 제조사가 부담하게 하거나, 자료 제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EU의 개정된 제조물책임지침(product Liability Directive)을 주된 근거로 드는 것도 공통적이다.하지만 제조사가 제품에 결함이 없음을 입증해야 하는 식으로 책임을 전환하는 입법례는 드물다. EU의 개정 제조물책임지침도 피해자가 입증책임을 부담한다는 원칙은 유지하지만, 일부 경우엔 제조물 결함으로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제조업자가 피해자가 요청한 관련 증거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 제조업자가 EU법 등에 규정된 안전요건을 준수하지 않는 경우 등이다.


제조사가 입증책임을 지는 것과, 추정된 부분을 반증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차이가 크다. 추정 요건 역시 해석상 논란 및 형평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세밀하게 규정해야 한다. 페달 오조작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소송으로 비화되거나 제조사가 무조건 결함이 없음을 입증, 반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법원이 단순히 입증책임의 법리만 가지고 피해자의 청구를 기각하는 예는 드물다. 피해자가 입증 없이 여러 의혹 내지 주장을 제기하더라도, 제조사 측은 기술적인 설명과 자료 제출을 통해 피해자의 주장에 대해 답변하고 법원을 설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원 역시 충분한 심리를 통해서 결론을 내리고 있다.


현재 발의되고 있는 개정안들은 법리적, 소송·실무적인 검토와 영업비밀 보호,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까지 균형있게 검토했다기 보다는 시류에 맞춰 흘러가는 측면이 크다. EU의 제조물책임지침 개정은 수십년에 걸친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통해 이루어졌다. 인공지능·사물인터넷 등 신기술과 관련해 소프트웨어까지 제조물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제조물 결함 정의의 정비, 책임 주체의 정비해 진보적인 입법으로 평가할 수 있다. 반면 국내에서 논의되는 개정안은 제조사에게 무거운 패널티를 부과시키겠다는 자극적인 논의에 치중할 뿐이다. 섣부른 개정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이라도 냉철함을 되찾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 건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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