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저축은행의 실망스런 위기 대응

금융부 김우보


“저축은행 수준이 딱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싶습니다.”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정리 현황을 살피던 금융 당국 관계자는 한숨을 내쉬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석 달 전 규정을 바꿔 부실 사업장 공매 주기를 단축했는데도 지금껏 성사된 거래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저축은행이 최저 입찰 가격을 시세보다 훨씬 높게 책정해 ‘파는 시늉’만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당국이 경·공매를 밀어붙이니 파는 척만 하는 것 아니겠나”라면서 “이대로라면 경·공매 주기를 더 좁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다시 규제를 꺼내는 데 부담감이 없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부실 PF 사업장을 사전에 정리해줄 것을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수차례 당부했지만 진척이 없으니 달리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새마을금고 사태 때문에 잠시 미뤄뒀을 뿐 진작 손봤어야 할 문제”라면서 “규제를 한 번 내놓으면 은행들이 정책 의도가 뭔지를 파악해서 미리미리 나서야 하는데 딱 제재를 받지 않을 정도까지만 움직인다”고 전했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씁쓸함도 남았다. 당국이 조만간 경·공매 주기를 더 조인들 저축은행들은 딱 그만큼만 더 움직일 것 같기 때문이다. 부실 PF 사업장 정리는 경제 전반을 뒤흔드는 이슈로 떠올랐고 가장 큰 뇌관을 안은 저축은행은 여느 업권보다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할 책임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부동산 시장은 결국 반등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나 “굳이 내 임기 때 손실을 대거 안을 필요가 있겠나”라는 일부 CEO의 얄팍한 계산에 여전히 매몰된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당국의 감시망을 피해 ‘고위험 대출’에 열을 올리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을 선까지만 움직이는 모습. 과거 저축은행 사태 때 보이던 후진적인 행태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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