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발전에 기여하고 약자를 위해 헌신했던 (故) 도헌 윤대원 학교법인일송학원 이사장의 자서전 '마이티 닥터(Mighty Doctor)'가 발간됐다.
24일 한림대의료원에 따르면 자서전 ‘마이티 닥터’에는 전란 속 힘들었던 어린 시절부터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해준 생물 채집단 활동, 외과 의사로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 병원을 설립하고 대학과 복지관을 운영했던 내용 등 79세에 작고하기까지 고인의 인생이 녹아있다. 덕적도 명의로 불리던 시절과 간염의 발병, 간암 진단, 간이식까지의 과정 등 생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도 담겨 역경과 고난을 극복한 고인의 도전정신과 신념을 엿볼 수 있다.
자서전의 제목 ‘마이티 닥터’는 모든 의사가 바라보고 가야 할 가치적 지향점을 뜻한다.
윤 이사장은 레지던트 2년 차 시절 인천 서쪽으로 배를 타고 4시간 동안 가야 하는 아득한 섬 덕적도 파견을 자처했다. 덕적도는 열악한 의료 환경 탓에 레지던트들이 기피하는 지역이었다. 링거액, 수혈용 혈액은 커녕 거즈조차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고자 고군분투했다.
그는 결핵 환자를 회진했던 때를 떠올리며 “지하실에 내려가니 그냥 맨땅에 놓인 기둥들에 빨래를 칸막이 삼아 20여 명이 살고 있었다"며 "그들은 내가 회진 약속을 지킨 것에 다들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지금껏 어떤 원장도 얼굴을 비춘 적이 없다는 것"이라며 회고했다. 특히 "그 시절 결핵 환자들은 그렇게 국가와 사회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는 비참한 삶을 살았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응급 환자를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수술을 집도했던 일화에서는 고인의 인간애가 드러난다. 그는 “2년 차 레지던트 신분이던 나로선 위 수술을 해본 적이 없고 조수조차 서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당시 병원에는 링거액이나 혈액도 없었다. (중략) 수술 기구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나마 쓸모 있어 보이는 몇몇 기구들을 준비하고 로사와 중학생 2명을 더 불러와 수술 준비를 했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수술을 도감을 보아가며 시도했다”며 환자를 살리고자 수술했던 순간을 떠올리곤 했다. 이후 그는 연이어 수술에 성공하며 ‘덕적도 명의’라 불렸다.
윤 이사장은 아버지였던 故 일송 윤덕선 학교법인일송학원 설립자를 이어 1989년 2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35년간 한림대학교의료원, 한림대학교, 한림성심대학교,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6개 복지관을 지휘하며 성장시켰다. 한림대의료원이 100억 원대의 적자를 무릅쓰고 공익을 위한 화상치료에도 꾸준히 투자해 온 건 고인의 의지 덕분이었다.
한림대학교의료원 산하 한림대학교한강성심병원은 보건복지부 지정 대학병원 유일의 화상전문병원이다. 2008년 사회복지법인 한림화상재단을 출범해 취약계층 화상환자에게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2009년부터는 해외 화상환자를 대상으로 치료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해당 사업으로 현재까지 8개국 1105명의 화상 환자에게 무료진료를 했다. 97명은 현지에서, 57명은 국내로 초청되어 수술을 받았다. 그는 자서전에서 “모두가 기피하는 화상치료에 과감히 투자한 것은 오로지 화상환자들을 살리겠다는 사명 때문이었다”며 “어떤 이유로든 생명을 방치할 수는 없다. 생지옥 같은 화상치료를 누군가는 해야만 했다. 아무도 안 하니까 우리라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고 썼다.
한림대의료원과 의료학술 파트너십을 맺고 교류했던 마크 하디 미국 콜럼비아의과대학 외과 명예이식센터장은 “윤대원 이사장은 첨단의학 발전에 기여하고 소외된 나라를 도우며 인류를 위해 최고 수준으로 봉사했다”고 전했다.
또 로버트 켈리 미국 뉴욕프레스비테리언병원 명예원장은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훌륭하고 많은 영감을 주는 사람”이라며 “다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대담한 비전으로 이끌어 모두가 동참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학교법인일송학원은 故 윤대원 이사장의 생전 뜻에 따라 자서전 인세 전액을 사회복지법인 한림화상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