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은 올림픽 무대에서 매 대회 한국 선수단에 메달을 안겼던 ‘효자 종목’이었다. 한국 대표팀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배드민턴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래 여덟 번의 올림픽에서 20개의 메달(금 6·은 7·동 7)을 따냈다.
하지만 최근 세 차례 올림픽에서는 ‘노 골드’에 그친 것도 모자라 일본 등 한 수 아래로 여겼던 국가들에 메달을 내주며 국제 무대에서 배드민턴 강국의 위상을 잃고 말았다.
대표팀은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는 다른 결과를 내겠다는 각오다. 김학균 감독은 지난달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한국 배드민턴 역사상 가장 좋은 성적을 내겠다”며 자신감 넘치는 각오를 밝혔다. 김 감독이 과감한 각오를 밝힐 수 있었던 것은 여자 단식 세계 랭킹 1위 안세영(22·삼성생명)뿐 아니라 또 다른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무대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복식 천재’ 서승재(27·삼성생명)다.
최근 서승재의 기세는 가히 압도적이다.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남자 선수로는 김동문(원광대 교수) 이후 24년 만에 남자 복식과 혼합 복식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김동문은 1996년 애틀랜타 대회 혼합 복식 금메달에 이어 2004년 아테네 남자 복식 금메달까지 한국 배드민턴 선수로는 유일하게 올림픽 금메달 2개를 목에 건 전설적인 선수다. 최고의 기량을 뽐낸 서승재는 안세영과 더불어 2023년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군산동고에 재학 중이던 2014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서승재는 특히 복식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이 때문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혼합 복식 금메달과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복식 동메달을 따낸 이용대의 뒤를 이을 선수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과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연이어 8강의 벽을 넘지 못하고 탈락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큰 대회에 약한 선수라는 꼬리표도 따라붙었다. 하지만 서승재는 포기하지 않았고 2023년 세계선수권에서 2관왕을 차지하며 날아올랐다. 서승재는 “‘나는 여기까지인가’라는 자괴감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저 ‘항상 최선을 다하고 겸손한 마음을 잃지 말자’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훈련하다 보니 2023년처럼 빛을 보는 시간이 온 것 같다”고 했다.
서승재는 이번 대회에서 남자 복식과 혼합 복식에 출전한다. 두 종목 모두 금맥이 끊긴 지 오래다. 남자 복식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김동문-하태권 조, 혼합 복식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용대-이효정 조의 금메달이 마지막이다. 서승재는 후배 강민혁(25·삼성생명)과 짝을 이룬 남자 복식에서는 세계 5위, 채유정(29·인천국제공항)과 호흡을 맞추는 혼합 복식에서는 세계 3위에 올라 있어 두 종목 모두에서 메달을 따낼 가능성이 크다. 서승재는 “두 종목 모두 금메달이 목표다. 그 목표에 맞게 열심히 준비했다”고 당찬 각오를 밝혔다. 서승재가 자신이 말한 목표를 이룬다면 올림픽 단일 대회에서 이 두 종목 금메달을 모두 따낸 우리나라 최초의 선수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27일 오후 3시 30분(한국 시각) 혼합 복식 예선을 시작으로 금메달 사냥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