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올림픽 열기는 늘 양궁을 기점으로 살아나고는 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장혜진을 필두로 한 여자 대표팀의 금빛 활약에 올림픽 응원 분위기가 고조됐고 2021년 도쿄 때는 안산이 3관왕의 위업을 달성하며 우리 국민을 TV 앞으로 끌어들였다.
27일(이하 한국 시간) 개막한 파리 올림픽은 축구·농구·배구 등 단체 구기 종목의 본선행 실패까지 겹쳐 큰 관심을 얻지 못했지만 또 한 번 양궁이 ‘치어리더’ 역할을 할 분위기다.
이번 대회 한국 양궁의 첫 금메달은 일요일인 28일 밤부터 지켜보면 된다. 여자 대표팀이 이날 오후 9시 38분 파리 레쟁발리드 특설 사로에서 2회전인 8강을 치른다. 결승은 29일 0시 11분 시작이다. 임시현(한국체대)과 남수현(순천시청), 전훈영(인천시청)이 힘을 모은 우리 대표팀은 1번 시드를 확보해 1회전을 건너뛰고 8강부터 치르게 됐다. 대만-미국전 승자가 8강 상대이고 4강에서는 프랑스·네덜란드·인도 중 한 팀과 격돌한다. 한국 출신 권용학 감독의 지도를 받는 중국이 최대 라이벌이다. 중국은 올해 세 차례 월드컵 중 두 번을 결승에서 한국을 꺾고 우승했다.
우리 대표팀 3명은 모두 올림픽이 처음이다. 임시현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3관왕 주인공이지만 다른 둘은 지난해까지 국제 대회 경험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셋은 25일 랭킹 라운드에서 올림픽 신기록(2046점)을 합작하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여자 양궁 단체전은 한국 스포츠 전체의 자랑이자 자존심이다. 처음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88년 서울 대회부터 직전 도쿄까지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다. 이번까지 정상을 지켜내면 올림픽 10연패의 신화를 쓴다.
김수녕·조윤정·김경욱·윤미진·박성현·기보배·장혜진·안산의 계보를 이을 신궁은 임시현이다. 25일 랭킹 라운드에서 694점의 세계신기록을 쏴 전체 64명 중 1위에 올랐다. 72발 가운데 48발을 10점에 꽂았고 이 가운데 21발은 가장 작은 원인 ‘엑스텐’에 들어갈 만큼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대한양궁협회는 랭킹 라운드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선수에게 혼성 단체전(혼성전) 출전권을 준다. 임시현은 혼성전 티켓을 따내 3관왕 도전의 기회를 얻었다. 그는 “예선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 좋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3관왕 가능성에 대해서는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잘하겠다”고 했다.
한국 지도자의 계속된 해외 유출과 그로 인한 주요국 전력의 상향 평준화에도 여자 단체 등 한국 양궁은 결정적인 순간 차이를 만들어내며 최강 지위를 이어오고 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평균 명중률 9.65점 이상의 피도 눈물도 없는 ‘로봇 궁사’와 대결하며 극한의 환경을 감각에 새겼다.
100년 만에 파리로 돌아온 올림픽은 각국 선수단을 실은 배가 센강을 6㎞ 이동하는 유례 없는 ‘수상 개막식’으로 화려하게 출발했다. 206개국에서 온 1만 500명의 선수는 32개 정식 종목에서 329개 금메달을 놓고 경쟁한다. 한국 선수는 21개 종목에 143명.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48년 만에 최소 규모로 꾸려졌다. ‘소수 정예’를 기치로 내건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5개 이상을 따 종합 순위 15위에 오른다는 목표로 17일간의 열전에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