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일본뇌염까지…빨라진 모기와의 전쟁

한국 아열대화로 모기 서식 유리해져
서울 올해 첫 말라리아 위험지역 포함

지난달 27일 오후 인천 중구 인천보건환경연구원에서 연구사들이 모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한국에서 말라리아 경보라니. 요즘엔 비도 스콜처럼 내리고, 점점 날씨가 동남아처럼 변하는 것 같아요.”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이 모(31)씨는 최근 모기 기피제를 종류별로 사들였다. 반려견 산책을 위해 매일 외출해야 하는데 거주 지역에 각종 모기 경보가 내려진 탓이다. 이씨는 “강아지가 모기에 물려 심장사상충에 감염될까 봐 진작 약을 사 먹였지만 이제 나까지 뇌염모기·말라리아 걱정을 해야한다”며 “‘설마’ 하면서도 저녁마다 모기약을 잔뜩 뿌리고 나간다”고 말했다. 양천구에 거주하는 유 모(23)씨 역시 “집 앞에 안양천이 있다 보니 걱정돼 가정용 포충기를 구비했고 환기도 잘 안 하게 된다”고 전했다.


기후변화 여파로 우리나라에서 말라리아 등 모기 매개 질환에 노출되는 지역이 확장되고 매개 모기 발생 시기도 앞당겨지고 있다.


28일 질병관리청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말라리아 및 일본뇌염 매개 모기 수는 지난해와 예년 수준을 모두 넘어섰다. 최근 말라리아 매개 모기(얼룩날개모기) 밀도는 평균 15.3개체로, 평년(6.3) 및 전년(6.2)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모기 활동 시점도 앞당겨졌다. 지난달 18일 질병청은 지난해보다 1주 일찍 전국에 말라리아 주의보를 발령하고 “말라리아 위험지역의 23주 차 최고 기온(27.3℃)이 평년 및 전년 대비 약 2도 높아져 모기의 활동이 다소 빨라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질병청은 올해 처음으로 서울 13개 구를 말라리아 위험지역에 포함하기도 했다. 그동안은 경기 북부나 강원도 등 북한 접경지역을 위주로 위험지역을 선정했지만, 이상기후로 늘어난 모기가 서울 도심까지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뇌염 매개 모기(작은빨간집모기) 또한 지난해보다 확연히 늘었다. 올해 29주 차 기준 평균 111개체를 기록해 지난해(41개체)보다 70개체, 평년(69개체)보다 42개체 증가했다. 지난해 일본뇌염 매개 모기는 평년(2018~2022) 대비 2주 빠른 14주 차에 최초 발생했는데, 올해의 경우 동일 주차에 매개 모기가 발견된 것은 물론 평균 개체수도 2개체에서 7개체로 늘어났다. 지역별 보건환경연구원의 첫 채집 시기 역시 지난해보다 이른 양상을 띤다. 전북에서는 매개 모기가 지난해보다 약 10일, 인천에서는 약 2주가량 일찍 작은빨간집모기가 채집됐다.


이같은 변화는 유독 일찍 찾아온 무더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올해 폭염주의보는 지난해보다 일주일 빨리, 열대야는 18일 빨리 발생했다. 질병관리청은 ‘주간 건강과 질병’에서 한국의 기후변화(아열대화)로 인해 점점 매개 모기 서식에 최적화된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면서 “일본뇌염 주의보 발령 시기의 변화는 기후 온난화가 변온동물인 곤충의 활동 시기를 앞당기고 있다는 것을 대변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특히 장마철이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물웅덩이에서 알이 성충이 돼 나오면서 모기가 더욱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이에 각 지자체 등은 갑작스레 닥친 ‘모기와의 전쟁’에 당황하면서도 서둘러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말라리아 경보가 내려진 강서구·양천구 관계자들은 “경보 발령 당일 즉시 안내 문자를 발송했고 주기적인 방역과 함께 보건소에서 말라리아 검사를 하고 있다”면서 “향후에 산 밑이나 수변 공연 등 야외에서 행사를 열면 필요시 추가 방역 조치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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