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가 오디션 ‘화100’의 1차 미션에 올라온 100명의 지원자들이, 최소한 미술을 전공했거나 프로페셔널로 향하는 아마추어 예술가들이 대다수일거란 예상은 빗나갔다. ‘전국민 대상 오디션’이라더니 정말 모두 섞여 있었다. 카카오톡의 이모티콘 디자이너에서 펜화를 그리는 아이돌 그룹 멤버까지. 이 서바이벌에서 누구를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지 에이전트(심사위원)들은 당황했다.
08AM 그도 첫 미션 ‘자화상’에서 떨어질 뻔했다. 시그니처 캐릭터를 자아화한 그의 그림은 10,20대의 열광 속에 잘 팔릴 듯했으나, 결정적으로 현대미술이 요구하는 도전적, 전복적 요소가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1차를 통과하면서 그는 에이전트들이 원하는 바를 파악해간다. 첫째, 시각적 스타일이 주제를 압도해선 안되고. 둘째, 인문학적 접근이나 사회적 비판의식을 포함해야 하며. 셋째, 주제의 연구가 수반되고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어야 했다.
프로페셔널 예술가들이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다가 미션 단계마다 탈락하는 사이, 상기한 바를 간파하고 전략을 수정한 자들-08AM을 포함한-은 최종까지 살아남았다.
08AM은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순수미술작업을 하고 싶었고, 졸업 뒤 그 길을 간다. 일러스트레이터, 웹툰 작가 등이 포함된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다 2012년 그룹전을 시작으로 2013년 첫 개인전을 열었지만 캐릭터가 특징인 그의 작업은 순수미술로서 인정받기 어려웠다. 스트리트 문화를 다루는 아트페어 ‘어반브레이크’에 참여하고, 서브컬처와 그래피티를 다루던 갤러리 피프티피프티(FIFTY FIFTY)에서 2016년 개인전을 다시 열며 이름을 알려간다. 2017년 뉴욕의 스트리트 아트와 아트마켓을 경험하면서 작품에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차용하기 시작했다. 2024년 5월 MBN의 대국민 화가 오디션 ‘화100’에서 준우승한다.
그는 작업에 전 시간을 투자하는 풀타임 예술가로, 예술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소수에 해당한다. 스트리트 문화와 패션, 게임에 가깝고, 디지털과 SNS에 능하며, 2021년 한국 예술가로는 처음으로 오픈씨(Opensea)에서 NFT판매를 시작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방송을 운영 중이다.
패션과 음악잡지, 게임매거진에 소개됐지만 전문 미술비평가가 그를 다룬 글은 찾지 못했고, 시장과 소비자에 무척 가까워 삼성전자나 필라, 프링글스 등 다수의 브랜드와 협업해왔다.
08AM은 미술작가 오디션 프로그램 ‘화100’의 6개 미션에서 큰 실패 없이 두각을 드러냈다. 자신의 스타일을 답습하기 보다는 그때그때 형상을 변주하며 대상을 표현하는 능력이 좋았다. 때로는 그로테스크하거나 의문의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는데, 주제에 떠오르는 일차적인 연상을 배제하고 다른 사물을 여럿 배치하여 은유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2차 미션의 작품 ‘유희’를 보면서 나는 그가 우승후보임을 직감했다. ‘화투’를 주제로 삼일 간 그린 이 작업은 화투패의 ‘송학’에 등장하는 학과 달을, 피가 낭자하며 죽어가는 학과 달이 지고 있는 낯선 모습으로 제시하면서, 화투의 보편적 의미를 걷어내고 자신이 창작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작가만의 특이한 해석을 통해 관객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것은 다른 지원자에게 없는 강력한 장점이었다.
‘보편적 인간상’이 주제였던 마지막 미션에서, 그는 이 주제를 ‘헛된 것을 쫓지 말라. 인생은 덧없는 것’이란 바니타스(Vanitas)의 메시지를 전하는 현대적 정물화로 구성했다. 08AM에게는 머리의 구멍에서 흐르는 액체, 스프링 또는 하트조형 등 자신만의 시그니처 형상이 있는데, 그는 작품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에 이를 포함시킨다.
방송에서 편집됐지만, 이 작업에 대해 에이전트(심사위원) 중 한 명인 심상용 서울대 교수는 “바니타스란 ‘물질적인 것, 세속적인 것을 경계하라’…는 의미건만, 작품에 작가의 시그니처 형상이 들어가 있다. 이 형상은 08AM이 자신의 작업임을 드러냄으로써 작품의 물질적 가치를 유지하게 만든다. 이것은 세속적인 것을 경계하라는 작품 주제와 예술가의 실제 행동의 이율배반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보편적인 현대미술가들은 작품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 자체가 예술가를 상징한다고 하는 게 맞다(한스 애빙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 중에서). 상업적 예술가는 내적인 동기보다 외적인 보상을 더 많이 추구하며, 메멘토 모리를 통해 드러난 그는 자신을 감추는 현대미술가라기 보다 자신의 시그니처 형상을 통해 외적 보상을 쫓는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줬다.
그의 포부대로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려면 결정해야 한다. 작품이 너무 많이 팔리고, 유명한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사들여서, 미술계 전문가들조차 어쩔 수 없이 그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단계에 오르거나. 아니면 화100의 마지막 미션을 질타한 심상용처럼 비평가들에게 계속 담금질을 당하며 현대미술가로 자신을 리셋하거나. 두 개의 길을 동시에 가기는 어렵다.
▶▶필자 김희영은 서울문화재단 제휴협력팀장이다.
2010년부터 서울문화재단에 재직하며 금천예술공장 총괄매니저를 7년간 맡았다. 레지던시 스튜디오를 통한 예술가 지원, 예술을 통한 지역재생, 테크놀로지 기반 예술과 NFT기획이 전문 분야이며, 그가 금천예술공장에서 실현한 In-House Production 시스템은 2010년 이후 한국 테크놀로지 기반 예술 지원의 중요한 지표가 됐다.
그전에는 ‘미디어시티_서울2000’, ‘세계도자기엑스포경기도2001’, ‘부산비엔날레2003~2005’ 등의 전시팀에서 일했고, 서울대에서 미술이론 석사, 미술경영 협동과정 박사를 취득했다.
MBN의 전국민오디션 ‘화100’ 심사위원(2024), 국민대 행정대학원 박물관미술관학 전공 겸임교수(2020),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복지위원회 위원(2019~2021)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