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시작하려면 새로운 것을 시작하라.”
이달 초 찾은 인도 벵갈루루 남부 올라캠퍼스의 1층 로비에서 이러한 문구를 새긴 기둥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올라는 인도판 우버로 잘 알려진 인도 1위 모빌리티 기업이다. 인구 14억 시장에서 1위로 올라선 비결에 강력한 도전 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의미다.
올라그룹의 도전은 모빌리티에서 그치지 않았다. 바비시 아가르왈 올라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인도 최초의 대규모언어모델(LLM) 기업인 크루트림이 올 초 인도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중 처음으로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사) 기업으로 인정받는 데 성공했다. 상대적으로 혁신 기업의 성장세가 약했던 인도에서 유니콘 기업이 등장한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인도에서 다양한 혁신 기업이 나타나기 시작한 배경에는 정부 주도의 인력 육성 대계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인도가 영국에서 독립한 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본떠 설립한 인도공과대(IIT)는 핵심 엘리트 사관학교로 꼽힌다. 인도 스타트업 CEO 대부분이 이 학교 출신이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와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CEO도 IIT를 나왔다.
오직 실력만으로 경쟁하는 자유로운 문화도 인도가 슈퍼 이공계 인재를 키워내는 비결이다. 실제 크루트림이 자리한 8층 건물의 올라캠퍼스는 MZ세대 개발자들로 활기를 띠었다. 칸막이 없는 책상에서 자유롭게 자리를 잡아 노트북을 두드리거나 통유리 회의실에서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을 보면서 마치 대학 캠퍼스에 들어선 듯한 착각이 들었다. 올라일렉트릭에서 근무하는 차야 다바스 씨는 “크루트림을 포함한 올라는 근무 장소나 출퇴근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며 “개발자들이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자율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도의 AI 인재들은 과거와 달리 자국에서 성장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과거 핵심 인력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미국과 유럽 등 해외로 빠져나갔다. 그러나 인도의 가파른 경제성장과 AI 산업을 키우려는 정부의 지원 정책이 이어지자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는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기업 다수가 인도에 진출하고 투자를 늘린 점도 한몫했다. 인도의 실리콘밸리인 벵갈루루에만 인도 AI 인력(41만 6000명)의 16.8%인 6만 9000명이 몰렸다. 1985년생인 크루트림의 아르가왈 CEO 역시 IIT 뭄바이를 졸업한 뒤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근무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인도 특유의 ‘주가드(Jugaad)’ 정신은 AI 스타트업의 외연을 넓히는 동력이 됐다. 주가드는 힌디어로 ‘생존하기 위한 혁신’을 뜻하는 단어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끌어낸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크루트림의 경우 비용 효율화 차원에서 자체적인 AI 칩과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수보닐 차터지 올라일렉트릭 최고기술책임자(CTO)는 “AI 반도체 선두 주자인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는 비싼 비용 때문에 인도에서 적용하기 적합하지 않다”며 “성능은 높이고 에너지 소모량이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AI 칩 설계를 위해 투자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입장에서 인도는 저렴한 기술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거점으로서 매력적이다. 이들 인력은 영국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활용도는 더욱 높다. 삼성전자와 구글·아마존·MS 등 IT 기업들이 앞다퉈 이곳에 연구센터를 세우는 이유다. 삼성전자 벵갈루루연구소(SRI-B)는 소장부터 정규 엔지니어링까지 총 3000여 명의 개발 인력 전체를 현지인으로 채용했다. 매년 200개 이상의 특허를 출원하는 연구 성과를 거두는 한편 6세대(6G) 이동통신과 AI 등 신규 프로젝트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