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인공지능(AI) 도입이 가장 활발한 영역으로는 의료 산업을 꼽을 수 있다. 매년 국내총생산(GDP)이 7%씩 뛰며 세계 5위 경제 대국에 오를 정도로 성장하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의료 인력과 인프라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의사 부족 현상이 역설적으로 첨단 의료 AI 산업 발전의 마중물이 된 셈이다.
이달 초 인도 벵갈루루에 있는 의료 스타트업 도지 사무실을 방문하자 수십여 명의 개발자들이 책상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업무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곳은 인도 최초로 AI 기반 비접촉 방식의 원격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을 선보인 곳이다. 환자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설치된 센서가 심박수와 호흡수, 혈압, 혈중 산소 농도, 온도 등을 실시간으로 24시간 모니터링한다. AI가 수집된 환자 정보를 분석해 이상 증상 발견 시 의료진에 즉각 알리는 조기 경보 시스템도 갖췄다. 현재 기준으로 인도 전역 370곳이 넘는 병원의 1만 5370개 침상에 해당 시스템이 적용됐다. 의료진이 밤새 병상을 지키지 않아도 환자의 위급 상황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시스템을 개발한 배경에는 인도의 열악한 의료 시스템이 있었다. 이 회사를 공동 창업한 무디트 단드와테 최고경영자(CEO)는 과거 그의 가족이 콩팥 이식수술을 받은 뒤 병원에 입원했다가 의료진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방치당한 뒤 사망에 이를 뻔한 아찔한 경험이 있었다. 인도 최고 명문인 인도공과대(IIT)를 졸업한 뒤 기계 엔지니어로 일하던 그가 실시간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 계기다.
도지의 시스템은 이미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실시간 모니터링과 조기 경보로 위험한 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적시 개입이 가능해지면서다. 기존 업무를 AI가 맡으면서 의료 인력들은 중요한 환자의 진료나 치료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가우라브 파르차니 도지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의료진이 중환자실 병상을 직접 찾지 않고도 환자 상태를 확인하면서 1인당 업무량이 기존 대비 18%가량 줄었다”며 “이상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즉각적인 치료가 이뤄지면서 많은 생명을 살리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인도의 AI 의료 시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성장 가능성이 큰 곳 중 하나로 꼽힌다. 올해 기준 인도의 의사 1명당 환자 수가 약 830명에 이를 정도로 의사 수가 부족하고 그나마도 대도시에 몰려 있어서다. 내년 인도의 AI 의료 시장 규모는 16억 달러(약 2조 2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AI 의료의 미래 성장성이 큰 국가 중 한 곳이다.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인프라까지 감안하면 관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정부의 규제와 신산업 성장을 막는 기득권의 반발이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인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AI라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지만 실제로 AI가 대기업 노조나 의사 등 기득권층의 반발을 넘어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원격진료 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정부가 올 들어 모든 의료기관에서 초진·재진 구분 없이 비대면 진료를 실시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기는 했지만 처방약을 집에서 받아볼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제한되고 있다. 섬·벽지에 거주하거나 거동 불편자(65세 이상 중 장기요양등급 판정자나 장애인), 1·2급 감염병 확진자, 희귀 질환자 등이 규제 해소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이들이다. 아마존이 일본에서 처방약 판매 시장에 뛰어들어 급격히 세를 불리는 것과 비교하면 이미 출발점 자체가 뒤로 밀린 셈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으로 촉발된 의료대란이 장기화하고 있어 AI로 의료진 공백을 메우는 절벽 해소 방안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의료진의 공백을 100% 대체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제한된 인력이 위급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