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너 될까 vs 맞불 놓을까… '트럼프 2기' 통상 대응전략 짜는 EU

'보편관세'땐 연 224조원 손실
무역갈등 EU 타격이 훨씬 커
취임전 美수입 확대 선제 제안
실패땐 고율관세 부과로 맞불
'당근과 채찍' 2단계 대책 수립

유럽연합(EU)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를 대비해 ‘당근과 채찍’이라고 할 만한 2단계 통상 전략을 마련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급부상으로 미국 대선 결과가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EU 경제에 미칠 영향이 절대적인 만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29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는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 시 벌어질 ‘2차 무역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구체적인 2단계 통상 전략을 수립 중이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할 경우 모든 국가의 수입품에 ‘10% 보편 관세’를 부과할 것을 약속했고 EU는 해당 조치가 연간 5000억 유로에 달하는 대미 수출의 약 30%에 해당하는 1500억 유로(약 224조 9000억 원)의 손실을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EU는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공식 취임 전 그의 캠프와 접촉해 미국산 수입 물량을 늘려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는 방안 등을 제안할 계획이다.


1단계 ‘협상’ 전략이 실패로 돌아가면 2단계로 미국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맞불’ 작전을 놓을 방침이다. FT는 EU 집행위원회가 50% 이상의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미국 수입품의 목록 작성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EU의 한 고위 관리자는 FT에 “우리는 미국의 골칫거리가 아니라 파트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며 “협상을 모색하겠지만 결렬될 경우 스스로를 방어할 준비도 돼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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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적극적인 대응은 2017년부터 약 4년간 이어진 트럼프 1기의 충격이 그만큼 컸다는 반증이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전통적 우방’인 유럽 국가들에 방위비 인상 압박과 관세 폭탄 등을 던지며 갈등을 일으켰다. EU 역시 보복관세로 맞섰지만 불필요한 대립에 양측 모두 피해를 입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집권 후인 2021년에 와서야 관세 부과를 일시 유예하기로 하는 ‘휴전’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EU의 협상이 통할지는 미지수다. EU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 폭이 최근 들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16년 1140억 유로였던 적자는 임기 말인 2020년 1520억 유로로 확대됐다. EU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을 대체하기 위해 미국의 액화천연가스(LNG)를 대량 수입하고 있지만 미국의 적자 폭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대(對)EU 무역적자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더 증가해 2023년 기준 1560억 유로에 이른다. EU 관리들은 “EU 주요 수출품이 의약품·자동차·샴페인 등 고가 식음료인 반면 미국 수입품은 부가가치가 낮은 경향이 있다”며 유럽 성장률과 내수 소비까지 주춤하고 있어 무작정 수입을 늘릴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다시 무역 갈등을 빚게 되면 EU에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선택지를 좁히는 요인이다. 얀 하치우스 골드만삭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관세 전쟁이 벌어질 경우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0.5%가 타격을 입지만 EU는 GDP의 1%에 해당하는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미국 역시 EU와 무역 전쟁 시 인플레이션이 재차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EU 관리자들은 유권자들이 생활비를 걱정하는 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인플레이션에 불을 지피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예전보다) 더 잘 준비돼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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