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자총협회가 사업장을 점거하는 형태의 쟁의행위를 일절 금지하는 방향으로 현행 노동조합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불법 쟁의행위와 관련한 손해배상 대부분이 사업장 불법 점거 때문에 발생하는 만큼 법 규정을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31일 경총은 ‘사업장 점거 전면 금지의 필요성’ 보고서를 발표했다. 파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법행위와 손해배상책임 대부분의 원인이 노조의 사업장 점거에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2022년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파업 손해배상 청구 원인의 49.2%가 사업장 점거에 의한 생산 중단이었다. 전체 손해배상 인용액의 98.6%를 차지했으며 폭행과 상해 등이 동반된 경우도 71%에 이르렀다.
경총은 사례도 제시했다. 2022년 금속노조 현대제철지회는 현대자동차와 같은 특별공로금 지급을 주장하며 사장실과 제철소 공장장실, 로비 등을 점거했다. 같은 해 전국택배노조는 파업 과정에서 CJ대한통운 본사를 19일간 점거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의 과격한 투쟁 방식이 오히려 노사 관계를 대립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총은 불법 점거에 대한 현행 법 규정은 유명무실하다고 주장했다. 현행 노조법에 의해 점거 행위가 금지되는 시설은 범위가 너무 협소하고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행 노조법은 ‘생산 기타 주요 업무 시설 등을 점거하는 경우’에 한해 점거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문제는 모호한 법 규정으로 인해 동일한 장소를 점거한 경우에도 판사 성향에 따라 다른 판결이 내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총에 따르면 2020년 대형마트 노조원 70여 명이 매장 안에서 행진하며 구호를 확성기로 제창하는 등 매장 관리 업무를 방해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위법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같은 해 구호를 제창하고 식품관 일부를 점거한 노조원 53명에 대해 법원은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경총은 “같은 장소에 대해서도 다른 판결이 내려지면서 산업 현장의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며 “사실상 무단 점거에 무방비 상태”라고 했다.
야당이 추진하고 있는 노란봉투법에 대한 우려도 내비쳤다. 경총은 “노란봉투법이 통과될 경우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사실상 봉쇄된다”며 “극단적인 불법 쟁의행위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우리나라의 노사 관계 발전을 진정 원한다면 불법 행위에 면죄부를 줄 것이 아니라 사업장 점거 금지 등 합리적인 노사 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