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잘’ 뭉쳐야 산다

해리스 구심점 부활극 쓰는 美민주당
공화당 ‘1극 지배’ 트럼프는 힘 빠져가
소통·공감 없는 배타적 결집 미래 없어
‘내분’ 與, ‘어대명’ 野도 건강한 단합을



대통령 선거를 불과 3개월 남짓 앞둔 미국 정치권에 극본 없는 한 편의 드라마가 탄생했다. 가제를 붙이자면 ‘뭉쳐야 산다’ 정도가 될까.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전격적인 후보 사퇴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급부상, 자멸 직전까지 내몰렸던 민주당의 기사회생은 미국 정가에 빠르게 확산됐던 ‘어대트(어차피 대통령은 트럼프)’ 분위기에 급제동을 걸었다. 뻔한 결말이 예고됐던 11월 대선은 예측 불허가 됐다.


미국 민주당 부활 서사의 시작점은 6월 27일 TV 대선 토론으로 봐야 할 것이다. 노쇠한 현직 대통령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그러잖아도 패색이 짙던 재선 캠페인의 둑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대선 후보직 사퇴를 압박하는 민주당 인사들과 완주를 고집하는 대통령 측의 분열 속에 민주당은 자멸의 늪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극적 반전을 일으킨 것은 당을 위기로 몰아넣은 당사자인 바이든 대통령이었다. “통합을 위해 새 세대에 횃불을 넘기겠다”는 바이든의 사퇴 선언을 신호탄 삼아 민주당은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뭉치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4년 동안 이렇다 할 존재감이 없던 해리스 띄우기에 그토록 속도를 낸 것은 그가 분열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잠재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을 시작으로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 원로들, 기부자들까지 합심해 당내 분열을 종식시키고 물 흐르듯 새로운 판을 만들어낸 일련의 과정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민주당의 단합 덕에 해리스 부통령은 최근 실시된 일부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앞지르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정치에서 분열이 필패를 낳는다는 법칙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확인된 명제다. 1980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것도, 1860년 민주당이 에이브러햄 링컨을 후보로 옹립한 공화당에 처음으로 대권을 빼앗긴 것도 당의 내분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렇다고 단결이 절대 선이 될 수는 없다. 공화당은 일찌감치 단일 후보가 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특히 7월 13일 유세 현장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 이후 공화당은 그를 ‘영웅’이자 ‘신이 구한 사나이’로 추켜세우며 단일대오를 더욱 확고히 했다. 공화당 전당대회는 ‘트럼프의, 트럼프에 의한, 트럼프를 위한’ 대관식이 됐고 당의 정강 정책은 그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적은 공약집이나 다름없게 됐다.


34건의 중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포퓰리스트가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공화당의 결집을 어떻게 봐야 할까. 공화당이 단결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일명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불리는 트럼프 극성 지지층 외에는 모두 당을 떠났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금의 공화당은 배타적이다. 트럼프의 노선에 반대하는 전통 보수주의자들은 설 곳을 잃거나 스스로 떠났다. 배타적이고 맹목적 추종은 조직을 병들게 하고 더 큰 분열을 초래할 뿐이다.


미국 민주당의 단합이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나라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고민과 토론, 설득·공감과 양보라는 민주적 과정을 거쳐 도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견제하기 어려운 ‘사당(私黨)’으로 변질돼버린 공화당에서는 이제 이념도, 원칙도, 민주주의의 미래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우리 정치권에서도 단합이 화두다. 국민의힘은 ‘분당(分黨)대회’라는 오명을 남긴 7·23 전당대회가 끝나자마자 ‘화합’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의 ‘러브샷’과 한두 차례 회동만으로 화합이 이뤄진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꾸준한 소통과 설득으로 김건희 여사 논란 등을 둘러싼 이견을 해소하고 당내 친윤·친한의 골을 메워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여권 갈등의 불씨는 언제든 치명적인 분열의 불길로 번질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또 어떤가. 8·18 전당대회를 앞두고 90% 넘는 표가 이재명 전 대표에게 몰리는 민주당의 지방 순회 경선에서는 낯뜨거운 ‘명비어천가(이재명+용비어천가)’만 흘러나오고 있다. 반면 “개딸들이 민주당을 점령했다”고 개탄한 2위 후보는 ‘수박(이재명의 배신자)’ 야유에 시달리고 있다. 말뿐인 화합은 기만이고 포용 없는 결집은 독재다. 망하지 않으려면 ‘잘’ 뭉쳐야 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