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 메모리반도체 기업이 중국 기업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대중(對中) 반도체 추가 통제 조치를 검토 중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가 여파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미국이 이르면 다음 달 말 미국 마이크론,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중국에 HBM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대중국 반도체 추가 통제 조치를 공개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익명의 소식통을 통해 “새 통제 조치는 중국 기업에 대한 HBM의 직접적인 판매를 차단하나 인공지능(AI) 가속기와 묶음으로 제공되는 반도체의 중국 판매가 허용될지는 불분명하다”면서도 “최종 결정이 내려진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미국이 반도체 기업에 대한 수출통제 조치를 취할 경우 어떤 권한을 사용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블룸버그는 “한 가지 가능성은 해외직접제품규칙(FDPR) 적용”이라면서 “FDPR은 미국의 기술을 조금이라도 사용한 외국산 제품에 대한 통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한다”고 보도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모두 반도체 제작 과정에서 미국산 설계 소프트웨어와 장비를 사용하고 있어 FDPR의 적용을 피해가기 어렵다. 다만 AI 가속기와 묶음으로 제공되는 반도체의 중국 판매가 허용될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중국이 최근 공격적으로 HBM 개발에 나선 것에 대한 견제 성격이 크다. 중국의 대표 D램 반도체 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국영 반도체 기업인 우한신신은 화웨이와 손잡고 HBM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올 5월 중국 정부가 다양한 국영기업들과 함께 3440억 위안(약 65조 원) 규모의 3단계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을 조성하며 HBM 개발에 쏟아부을 자금 또한 확보했다.
핵심 HBM 기술을 보유한 우리나라 기업에 대한 직간접적인 통제 시도라는 해석도 있다. 미국 메모리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은 중국 정부가 반도체 판매를 금지하는 보복 조치를 취한 후 중국에 HBM 제품을 판매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저사양 AI 가속기인 H20에 HBM3를 공급하고 있다. H20 칩은 중국 기업에 대한 판매가 허용된 상태다.
미국의 수출통제 조치가 현실화한다고 해도 HBM 매출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상당 물량이 엔비디아와 AMD 등 미국 빅테크로 흘러가고 있어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극히 일부 물량을 제외하면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회사)로 가는 물량을 대기에도 생산능력(CAPA)이 빠듯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HBM3E 생산이 몰리면서 저사양 AI 가속기에 주로 활용되는 HBM3 미만 제품은 거의 생산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