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살인' 부르는 주범 ‘C형 간염’…국가검진으로 뿌리 뽑는다

C형 간염, 중장년층 위협하는 간암 원인 15% 차지
방치시 간경변·간부전·간암 등 중증 질환으로 진행
백신없지만 간단한 혈액검사로 항체유무 확인 가능
질병청, 2025년부터 국가건강검진 항목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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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형 간염 항체가 있으면 좋은 거 아니었나요? 백신을 맞지 않아도 되고요. ”


자영업자인 서모씨(남·55)는 최근 건강검진을 받다가 간이 딱딱하게 굳는 간경변증(간경화)과 함께 간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들었다. 10년 넘게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하고 몇 년째 검진을 미뤄온 서씨. 평생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았고 최근에는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아 또래보다 건강하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창업 이후 만성적인 피로에 시달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증상도 없었기에 충격은 컸다. 정밀검사 결과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의 초기 간암이 1개 있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아무리 초기라지만 간암에 간경화까지 생긴 게 믿기지 않았던 서씨. 주치의로부터 “C형 간염 항체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 말문이 막혔다. B형 간염 뿐 아니라 C형 간염 역시 제 때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간경변증, 간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C형 간염 진단 받고도 증상 없으면 방치…B형 간염과 혼동하기도

김윤준 대한간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은 “C형 간염 항체검사 결과가 양성이라고 나와도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증 간질환으로 진행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C형 간염 진단을 받으면 곧바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C형 간염은 간에 염증과 손상을 일으키는 C형 간염 바이러스(HCV)에 감염된 환자의 혈액 등에 의해 감염된다. 성적인 접촉이나 수혈, 혈액을 이용한 의약품, 오염된 주사기의 재사용, 소독되지 않은 침의 사용, 피어싱, 문신을 새기는 과정 등에서 감염되는 경우가 흔하다. HCV에 감염되면 혈액 내 항체가 생성된다. 간단한 혈액검사만으로 HCV 항체를 발견함으로써 감염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반면 B형 간염 바이러스(HBV)는 항원·항체검사로 감염 여부를 진단한다. B형 간염 표면항원(HBs Ag) 양성 소견은 HBV 보균자라는 의미다. 단 B형간염 표면항체(HBs Ab) 양성 소견은 과거 HBV 감염이나 예방접종으로 면역력이 생겼음을 뜻한다. 엄연히 원인 바이러스의 종류와 성격이 다른 데도 일반인들 중에는 B형과 C형 간염 바이러스 항체검사 결과를 오해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걸 알아도 증상이 없다는 이유로 치료를 소홀히 하기도 한다.



과거 C형간염에 감염되었다가 치유되어 현재는 환자가 아닌 경우에도 항체검사 결과 ‘양성’ 소견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확진검사(RNA)를 통해 현재 감염여부 확인이 필요하다. 사진 제공=질병관리청

문제는 C형 간염을 제 때 치료하지 않으면 만성 바이러스 간염, 간경변증, 간부전, 간암 등 중증 간질환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한간학회에 따르면 C형 간염은 국내 간암 발생 원인의 약 10~15%를 차지한다. C형 간염 환자의 54~86%는 만성 간염으로 진행되고 이들 중 15~51%는 간경변증으로 진행된다고 알려졌다. 간경변증에서 간암 발생 위험도는 연간 1~5%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위험도가 높아진다.



◇ 백신 없지만 먹는 약으로 98~99% 치료 효과…조기진단 중요성 커져

C형 간염의 주요 증상은 발열, 피로감, 식욕저하, 어두운 소변, 복통, 구역, 구토, 관절통, 황달 등이다. 경증~중증까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급성 C형 간염 환자의 약 70~80%는 증상이 없다. 초기에는 증상만으로 감염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보니 만성화 되거나 중증 간질환으로 진행된 이후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무증상 C형 간염 환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간암 등 중증 간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선별검사의 중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온 이유다. C형 간염은 B형 간염과 달리 예방 백신이 없다. 대신 2~3개월간 꾸준히 복용하면 98~99% 완치 가능한 직접작용 항바이러스제가 개발돼 있다.




C형 간염 환자를 일찍 찾아내 치료하면 40~60대의 주요 사망 원인으로 악명 높은 간암의 싹을 초기에 잘라낼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과 대만, 이집트는 일반인을 위한 국가검진에 C형 간염 검사가 포함돼 있다. 미국과 호주, 프랑스는 주사용 약물을 사용하거나 수용자 등 C형 간염 고위험군에 한해 선별검사를 시행 중이다. 한국은 2015년 일부 병원의 주사기 재사용으로 C형 간염 환자가 집단 발생한 후 국가 차원의 관리에 나섰다. 2020년 이래 국내 C형 간염 환자가 감소세로 돌아선 건 신약의 등장과 더불어 정책의 결실로 평가된다.



김윤준 대한간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이 C형간염 조기진단과 치료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대병원

여전히 사망률이 높은 간암의 질병 부담을 낮추고 간염 퇴치를 가속화해야 한다는 학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생애 단 한 번 C형 간염 항체검사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항체검사는 어디까지나 선별검사다. 검사 결과 양성으로 나와도 C형 간염 환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감염된 뒤 완치된 경우도 항체검사에서 양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 현재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확진검사가 필요하다. 질병청은 검진 항체검사에서 ‘양성’ 결과를 통보받은 국민에 대한 확진 검사 비용 지원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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