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은 명치 끝과 배꼽 사이 상복부에서 위장 뒤쪽 후복막강에 위치한 장기다. 각종 소화효소를 분비하는 외분비 기능과 호르몬을 분비하는 내분비 기능을 담당한다. 췌장에 생긴 악성 종양을 췌장암이라고 부른다. 종양이 기원하는 췌장 내 세포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뉘는데 췌관 상피세포에서 기원한 췌관선암이 전체 췌장암의 약 90%를 차지한다. 일반적으로 췌장암이라고 하면 췌관선암을 뜻한다. 췌장은 머리, 몸통, 꼬리의 세 부분으로 구분하며 췌장암의 60~70%는 췌장 머리에서 발생한다.
췌장암은 국내 전체 암 발생 순위 중 8위를 차지하고 있다. 췌장암 연간 발생 환자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한 해에만 췌장암이 새롭게 발생한 환자는 8770명으로 집계됐다. 췌장암의 5년 생존율은 2017년~2021년 기준 15.9%로 10대 암 중 가장 낮다. 진단수술 기법과 항암 및 방사선치료의 발전 등을 통해 과거보다 치료 성적이 점차 향상되고 있다.
췌장암은 초기에 상복부 불쾌감, 소화장애 등의 증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발병 초기에 특이 증상이 거의 없다. 증상이 있더라도 다른 소화기계 질환과 감별이 어려워 조기 발견되는 사례가 드물다. 췌장암이 진행되면 체중감소, 복통, 황달, 지방변 등이 발생할 수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6개월 내에 5~10% 이상 체중이 감소했다면 암을 의심해야 한다. 복통으로 위와 대장 내시경검사 등을 받아도 이상 소견이 없고 약물치료에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췌장암일 가능성이 있다. 황달이 발생하면 눈의 흰자위와 피부가 노란색으로 변한다. 소변색은 진한 갈색 또는 붉은색으로 변하고 심한 경우 대변 색이 회색으로 변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런 증상은 주로 췌장 머리에 생긴 암이 담도를 막아 담즙이 간에서 십이지장으로 배출되지 못해 발생한다. 췌장 몸통 또는 꼬리에 암이 생겼을 때도 직접적인 침범 또는 전이에 의한 담도 폐쇄를 유발해 이러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췌장암은 유병률이 높지 않고 조기 진단 방법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선별검사가 권고되지 않는다. 국가암검진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유전성 종양 증후군, 유전성 췌장염, 만성 췌장염, 췌장 낭성 종양(물혹)이 있거나 직계가족 중 췌장암 환자가 2명 이상인 경우 급격한 당뇨 발생이나 당뇨가 악화된 경우 등은 췌장암 고위험군에 해당하므로 전문의와 상의해 선별검사를 고려할 수 있다. 췌장암이 의심될 때 1차 영상검사로는 컴퓨터단층촬영(CT)이 추천된다. 췌장이 후복막 깊이 위치하므로 검진에 흔히 사용되는 복부 초음파를 통해 암을 발견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복부 초음파 검사에서 췌장 종괴에 의한 췌관 또는 담도 확장이 관찰되면 췌장암을 의심할 수 있다. CT만으로 진단이 불충분하거나 CT 조영제 부작용, 신부전 등으로 CT 검사를 받기 어려운 경우에는 자기공명영상(MRI), 초음파 내시경을 통한 조직검사 등을 고려한다.
췌장암은 주요 혈관 침범 또는 전이 여부에 따라 절제 가능 췌장암, 경계성 절제 가능 췌장암, 국소진행성 췌장암, 전이성 췌장암으로 나뉜다. 우선 절제 가능 췌장암은 일차적으로 수술을 시행하고 수술 후 보조 항암치료 또는 항암방사선치료를 고려한다. 다만 조기 발견이 어렵다 보니 수술이 가능한 환자는 약 15%에 불과하다. 경계성 절제 가능 췌장암은 수술을 전제로 수술 전 선행보조항암치료 또는 선행보조 항암방사선치료를 고려한다. 국소진행성 췌장암은 증상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고식적 항암치료 또는 방사선치료 병용, 전이성 췌장암은 고식적 항암치료 단독요법을 고려한다.
절제 불가능한 췌장암에서 항암 또는 방사선 치료 목표는 암의 진행을 억제해 증상을 완화하고 삶의 질 향상 및 생존 기간을 연장시키는 것이다. 반응이 매우 좋아 전환 수술을 시행하는 경우도 있다. 췌장암의 담도폐쇄로 인한 황달이 발생하면 내시경적 담관 배액술 또는 경피적 배액술을 고려한다. 위배출구 또는 십이지장 폐쇄를 치료하기 위해 내시경적 스텐트 삽입술도 고려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므로 소화기내과, 간담도췌외과, 종양내과, 영상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병리과 등 여러 진료과 의료진이 참여하는 다학제 진료를 통해 치료 방침을 결정한다. 암의 진행 정도, 전신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개별 환자에 맞는 치료 방침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췌장암은 대부분 증상이 없는데다 다른 암종에 비해 선별검사를 받을 기회도 드물다. 췌장암의 유병률이 높은 고위험군에 해당하거나 췌장암을 의심할 만한 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병원을 찾아 전문의의 진료를 받고 적절한 시점에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