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금리, ‘잭슨홀 미팅’에 달렸다

김영필 경제부장
기준금리 인하 전 DSR 대출 규제 필요
부동산 등 정부 정책 스텝 완전히 꼬여
美 침체 우려크지만 GDP 성장세 견고
한은, 연준·주택가격 살필 시간 있어야

김영필 경제부장

2011년 이명박 정부의 첫 가계부채 대책이 나올 때다. ‘대책반장’으로 불리는 김석동 당시 금융위원장이 사석에서 “가계부채 대책을 위해 저축은행 같은 2금융권부터 대출을 조여놓았다”고 설명했다.


무슨 뜻일까. 가계부채의 핵심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이 많은 시중은행이다. 은행 대출을 관리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규제가 약한 2금융권으로 쏠린다. 풍선 효과다. 2금융권 대출이 급증하면 정부는 쫓기듯 제2, 제3의 대책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 부작용도 커진다. 이를 피하려고 2금융권부터 먼저 손을 썼다는 것이다. 뒤집어 보면 정책에는 순서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느낌인지 몰라도 이번 정부 들어 일의 순서가 뒤바뀌는 일이 잦다. 사흘 전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경제는 타이밍”이라며 한국은행에 8월 기준금리 인하를 촉구했다. 대통령실 생각도 비슷하다. 금리 인하 시 우려되는 부동산 시장은 15일 전 발표할 대규모 부동산 공급 대책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 당국도 시중은행에 주담대 금리를 높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금리가 올라가면 대출은 줄어든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정책은 앞뒤가 바뀌었다. 정부와 여당이 이달 금리 인하를 원했다면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실시 시점을 9월로 미루지 말아야 했다. 지난달에만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은행의 주담대가 7조 6000억 원 가까이 폭증했다. 금리 인하가 우선순위였다면 DSR부터 조였어야 했다.


따지고 보면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11일 집값 상승을 두고 “추세적인 전환이 아닌 일시적으로 지역에 따라 일어나는 잔등락”이라고 했을 때부터 일은 꼬였다. 박 장관의 말이 맞다면 금리를 내릴 수는 있어도 공급 대책을 내놓을 때는 아니다. 국토부는 지난달 17일에도 올해와 내년 서울 아파트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 상황은 반대다. 부동산과 통화, 정부 정책이 모두 뒤죽박죽인 셈이다.


시점이 문제이지 금리는 내려가게 돼 있다. 시장도 안다. 매파적인 7월 금통위에도 국고채 3년·10년 물 금리가 2%대로 하락했다. 미국 7월 고용이 예상을 크게 밑돌고 실업률이 치솟으면서 시장의 예상은 더 굳어지고 있다. 족집게처럼 미국의 경기 침체를 예측해왔다는 ‘삼의 법칙(Sahm’s rule)’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 법칙은 최근 3개월 실업률 이동평균이 지난 1년간 실업률이 가장 낮았던 때보다 0.5%포인트 높으면 경기 침체라는 공식이다. 미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다. 미국 경기가 급격히 둔화하면 한은도 선제적으로 움직일 요인이 된다.


다만 통화정책은 신중해야 한다. 금리는 ‘멍텅구리 폭탄’과 같다. 경제 각 분야에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준다. 특히 미국을 더 지켜봐야 한다.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기 대비 연환산 기준 2.8%다. 애틀랜타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3분기는 2.5%로 추정된다. 미국 노동시장이 식고 있지만 아직 패닉에 빠질 정도는 아니다. 미국이 침체에 들어가더라도 초기 과정이 느리게 진행될 것이다. 삼의 법칙도 절대적이지는 않다. 정확도 100%였다는 ‘장·단기 금리 역전=경기 침체’ 공식도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힘을 잃었다.


그래서 중요한 게 시간이다. 한은은 대출 규제가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가져올지 최소한의 확인이 필요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기조를 가늠할 수 있는 ‘잭슨홀미팅’도 관건이다. 현지 시간으로 22~24일 열리는 잭슨홀미팅을 보면 미국 경제가 ‘빅스텝(0.5%포인트 인하)’을 할 정도로 급박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8월 금통위다. 잭슨홀미팅 전인 21~22일 개최된다. 검토 가능한 자료가 많지 않다. 금통위 전 마지막 물가 데이터인 7월 소비자물가는 2.6%로 전월보다 되레 높다. 정부의 공급 대책 이후 볼 수 있는 집값 상황은 1~2주일치가 전부다. 중동 상황도 변수다.


금리 결정은 안개가 자욱한 도로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 외부 압력은 통화 당국의 입지만 좁게 만든다. 꼬일 대로 꼬인 정책 실타래를 풀려면 한은이 신중히 답을 구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