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복싱 '銅'력을 얻다[올림픽]

■비인기 설움 딛고…임애지, 값진 첫 메달
아크바시에 준결승 2대3 판정패
"많은 응원 처음…너무 짜릿했다"
체급 3→6개…'전략종목' 가능성
男복싱 2개 대회째 본선행 실패

5일 파리 올림픽 여자 복싱 준결승전에서 주먹을 교환하는 임애지(왼쪽)와 하티세 아크바시. 파리=성형주 기자

경기 후 임애지(왼쪽)를 격려하는 한순철 대표팀 코치. 파리=성형주 기자

한국 복싱에 12년 만의 올림픽 메달을 안긴 임애지(25·화순군청)는 “살면서 언제 이렇게 응원을 받을 수 있겠나 싶더라”고 했다.


5일(한국 시간) 프랑스 파리의 아레나 파리노르는 뜨거웠다. 열정적인 관중은 임애지와 상대인 하티세 아크바시(튀르키예)를 모두 응원하며 포기하지 않는 올림픽 정신에 기름을 부었다. 임애지는 “여기는 사람이 많아서 정말 재미있더라. 여기서 두 번이나 이겨서 짜릿했다. 오늘처럼 관중이 내 이름을 불러주니까 짜릿했다”며 “한국은 그런 환경이 없다. 실전에서 더 힘을 내는 스타일인데 한국에 가면 혼자 있더라도 많은 사람이 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해야겠다”고 말했다.


파리 올림픽 복싱 여자 54㎏급 8강전 통과로 동메달을 확보하고 이날 아크바시와의 준결승전에 나선 임애지는 2대3(28대29 27대30 29대28 27대30 29대28)으로 아깝게 판정패했다. 유효타가 많아 가져왔다고 본 1라운드를 실제로는 내주는 등 판정에 논란이 될 상황도 있었다. 근소한 판정승까지 기대할 만했으나 심판 5명 중 유럽 출신 2명은 아크바시에게 매 라운드 10점을 준 것으로 확인됐다. 마지막 3라운드에 불꽃을 일으켜봤지만 임애지는 결승에는 다다르지 못하고 4강 진출자 2명에게 주는 동메달에 만족했다.


임애지는 “내가 상대를 분석한 만큼 상대도 나를 분석했구나 싶었다”며 판정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 내가 깔끔하게 하지 못한 것”이라고 선선히 패배를 인정했다. 아크바시는 임애지보다 7㎝나 크고 같은 왼손잡이 아웃 복서라 공략이 더 어려운 상대로 지난해 유럽선수권 동메달리스트다. 그런 상대와 대등한 경기를 한 임애지는 “다음에는 그 선수가 ‘(임)애지랑 만나기 싫다’고 생각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한국 복싱에 올림픽 메달은 2012년 런던 대회 한순철(남자 60㎏급 은메달) 이후 처음이고 런던부터 정식 종목으로 치러지기 시작한 여자 복싱에서는 사상 최초다. 한국 여자 복싱이 올림픽에 나간 것 자체가 2021년 도쿄 대회가 처음이었는데 3년 만에 메달이 나왔다. 한순철은 현재 임애지를 지도하는 대표팀 코치다.


고교생 때인 2018년 아시안게임에 나가 첫판에 탈락했던 임애지는 2021년 도쿄 올림픽과 지난해 아시안게임 모두 첫판에 짐을 쌌다. 하지만 올해 6월 올림픽 2차 예선에서 아킬레스건과 햄스트링 부상을 안고도 4강 진출로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더니 이날도 왼팔·다리 통증을 이기고 멋진 마지막 경기를 남겼다.


임애지가 뻗은 희망의 주먹 덕에 한국 스포츠는 여자 복싱을 전략 종목으로 삼을 기회를 얻었다. 2012년만 해도 올림픽에 세 체급이 전부였던 여자 복싱은 파리에서 여섯 체급이나 치러졌다. 한편 남자 복싱은 이번까지 2개 대회 연속으로 본선 진출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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