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시가 급락했다.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의 7월 고용보고서 발표이 침체 우려가 커지고, 글로벌 증시에서 엔 캐리트레이드 청산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 투매를 불러일으켰다. 일부에서는 1987년 ‘블랙먼데이’가 재현됐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5일 미국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1033.99포인트(-2.6%) 하락한 3만8703.27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160.23포인트(-3.0%) 내린 5186.33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576.08포인트(-3.43%) 급락학 1만6200.08에 장을 마감했다. 대형 지수인 다우와 S&P 500은 2022년 9월 이후 가장 큰 일일 손실을 기록했다.
대형 기술주들은 폭락했다. 알파벳은 4.61% 하락했으며 아마존과 테슬라는 각각 4.10%, 4.23% 내렸다. 엔비디아는 6.36% 하락했다. 엔비디아는 전날 최신제품인 블랙웰의 결함으로 남품 일정이 3개월 가량 지연될 것이란 외신 보도의 여파로 10% 이상 급락한 후 낙폭을 줄였지만 급락을 피하지는 못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메그니피센트7(주요 7개 기술기업)들의 시가총액이 6530억 달러 사라졌다”며 “이는 7440억 달러를 잃었던 7월 24일 이후 역대 최대 시가총액 손실”이라고 말했다.
가상자산은 더 큰 폭락세를 보였다. 비트코인은 24시간 전 대비 9% 하락한 5만3819 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비트코인은 한 때 5만 선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더리움은 12% 급락한 242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뉴욕유가는 3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6개월 만의 최저치로 후퇴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근월물인 9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0.58달러(0.79%) 하락한 배럴당 72.9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 2월 초순 이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10월 인도분 가격은 전장대비 0.51달러(0.66%) 떨어진 배럴당 76.30달러에 마감했다. 브렌트유 종가는 지난 1월 초순 이후 7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월가의 공포지수라고 불리는 변동성지수(VIX)는 역대 가장 큰 일일 상승률을 기록한 후 다소 감소해 현재 64.9% 오른 38.57을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시장의 불안감은 커졌다.
시장은 미국 침체 가능성을 우려했다. 지난 2일 미국의 7월 보고서에서 실업률은 4.3%로 올랐다. 실업률을 기반으로 미국의 경기침체 여부를 실시간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인 '삼의 법칙(Sahm's rule)'으로 볼 때 미국 경제는 7월부터 침체에 빠져들게 됐다. UBS의 맥스웰 그리나코프는 “침체라는 단어가 돌아와 골디락스 전망을 기반으로 하던 거래에 탈선이 일어났다”고 장을 평가했다.
일본의 엔 캐리트레이드 청산도 글로벌 시장 폭락의 주요원인으로 꼽힌다.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으로 해외 투자된 엔화 자금이 일본으로 귀환하며 전 세계 증시가 하락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날 도쿄 주식시장에서 닛케이평균주가(닛케이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2.4%(4,451엔) 폭락한 31,458.42엔에 마감해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다만 침체 우려가 과장됐다는 시각도 나온다. 스위스 민간은행인 롬바르 오디에의 최고이코노미스트인 새미 챠르는 “미국 소비자들은 여전히 비교적 건강하고 꽤 정상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곧 미국 경제가 여전히 안정적이라는 점을 뜻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7월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전월(48.8)보다 2.6포인 오른51.4를 기록하며 ‘확장’으로 전환했다. 미국 서비스업의 전반적 경기를 나타내는 지수는 50을 넘으면 확장세를 의미한다. 이날 수치는 월스트리트저널(WSJ)가 집계한 예상치 50.9를 상회했다.
이에 이날 주식시장의 급락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보다는 이른바 ‘블랙먼데이’로 알려진 1987년 10월 19일 상황과 비슷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야데니 리서치의 에드 야데니 대표는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1987년이 연상된다”며 “당시 우리는 주식 시장에서 폭락을 겪었고 기본적으로 하루 동안 모든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주식 폭락으로 경기 침체에 빠졌거나 곧 진입하리라는 시각이 있었지만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미국 국채 수익률도 이날 장초반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ISM 서비스업 PMI가 침체 우려를 덜면서 낙폭을 줄였다. 기준금리 변동 전망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채 수익률은 장 마감 시점 기준 전 거래일보다 약 3bp(1bp=0.015포인트) 하락한 3.763%에 거래됐다. 2년 물 국채 수익률은 이날 장 초반 3.658%까지 하락했지만 이날 오전 ISM의 서비스업 PMI가 발표된 이후 낙폭을 줄였다.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0.9bp 내린 3.881%에 거래됐다. 10년만기 국채 수익률 역시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이날 외부 발언에 나선 오스탄 굴스 시카고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시장의 침체 우려가 과하다는 시각을 내비쳤다. 굴스비 총재는 미국 경제에 대해 “꽤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침체론에 선을 그었다. 그는 연준의 임무는 한달치의 노동지표 약세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굴스비 총재는 7월 고용보고서에서 실업률이 4.3%로 오르는 등 고용 둔화 신호가 강해진 데 대해 “일자리수가 예상보다 약하게 나왔지만 아직 침체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며 “경제가 어디로 항하는 지 미래를 보며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경제 약세가 나타날 경우 대처하겠다는 언급도 덧붙였다. 그는 “연준의 임무는 고용을 극대화하고 가격을 안정시키면서 금융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이 중 어느 부분이든 악화된다면 이를 고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장에서는 연준의 긴급 금리 인하에 대한 요구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 선물시장에서는 현재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에서 0.5%포인트를 인하하는 빅스텝 확률을 83.5%로 보고 있다. 1주일 전 11.4%에서 70%포인트 이상 급등했다. 이어 연말에는 기준금리가 현재보다 1%포인트 낮은 4.0~4.25%가 될 확률이 45.7%로 가장 높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제러미 시겔 교수는 이날 미국 CNBC 방송에서 “기준금리는 현재 3.5~4.0%에 있어야 한다”며 9월 FOMC 이전 75bp의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9월 정례회의에서 또다시 75bp를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반면 연준의 긴급 금리 인하가 증시 폭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캐리트레이드 청산을 더욱 부추겨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란 시각도 있다. 베어트랩스레포트 뉴스레터를 발간하는 금융리스크 전문가 로렌스 맥도날드는 “연준이 긴급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경우 달러가 약해지고 엔이 강해저 케리 트레이드 청산이 더 악화된다”며 “연준이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 금리를 인하하는 것보다 연준의 대차대조표를 사용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연준이 보유한 국채와 모기지담보증군(MBS)를 줄이는 양적긴축(QT)을 종료하는 등 간접적 방식으로 시장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