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공포, '트라우마' 다가온다…인천 전기차 화재 6일째 [르포]

화재 현장 응급의료소 덩그러니 세워져
정작 이재민이 필요한 대피소에는 없어
이재민들 위한 의료전달체계 구축 시급

인천시 서구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대피소에 6일째 임시 거주하는 아이들이 집으로 가고 싶다는 글을 써 놓고 있다. 인천=안재균 기자


6일 오전 8시 20분 인천시 서구 청라의 한 아파트. 이곳 주민들은 최근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로 느닷없이 이재민이 된 지 6일 차다. 이른 오전시간임에도 외부 온도는 30℃를 가리킨다. 지난 3일 오전 10시부터 인천에 내려진 폭염경보는 이날도 이어질 듯하다. 폭염경보는 일 최고 체감 온도가 35℃ 이상인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할 때 내려진다.


올라간 온도만큼 이곳 입주민들의 한숨도 높아지고 있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6일째 도시락으로 매 끼니를 해결하고 아침부터 전날 입었던 옷가지를 들고 빨래방을 오가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닐 수 없다. 완전복구까지는 올 연말께나 돼야 한다고 하니 한숨이 절로 나올법하다. 화재 현장의 이런 모습들은 전기차 화재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주변에서 다가오는 온정의 손길이 그나마 이재민들에게는 큰 위안이다. 청라2동 행정복지센터 대피소의 이재민을 위해 인근 아파트에서 샤워실을 개방하고 지역 약국에서는 의료물품을, 익명으로 생필품 갖다 놓는 발길은 6일째 이어지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간식거리는 또래친구들이 가져다 놓는다고 한다.


문제는 이재민들을 위한 의료전달체계가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화재로 인한 ‘트라우마’ 문제다. 화재 당시 단전되면서 비상벨이 작동하지 않아 외부 상황을 모른 채 잠든 주민들에게는 이번 사고가 큰 공포로 다가왔다.


청라2동 행정복지센터에서 만난 이재민 김 모(69)씨는 “이른 아침에 발생한 화재여서 연기가 집으로 들어오는 시점에 소방대원들이 문을 두드려 알게 됐다”며 “자칫 대피시기를 놓쳤다고 생각하면 아찔한 순간”이라고 호소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화재 이후 집 떠나 있으면서 보이는 심리적 불안은 더 큰 상황이다. 이날 대피소 한 곳에 있는 화이트보드에는 아이들의 심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집에 가고 싶어요”, “풍경채 2차 329동”, “집 그리워”, “집집집”과 같은 삐뚤삐뚤한 글씨체는 누가 봐도 아이들이 집을 그리워하며 쓴 글이다. 어릴 적 이러한 트라우마가 반복될 경우 복합성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일으킨다고 알려졌다. PTSD는 의학계에서 질환으로 분류된다.


정 모(55)씨는 “저녁에 아이들이 울면서 당시 화재 상황을 얘기한다”며 “아이들에게 화재로 인한 심리치료가 시급한데 아직 아무런 조치가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 아파트 화재 현장에만 이날까지 현장응급의료소 등이 운영되고, 정작 심리치료가 필요한 대피소 이재민에게는 제대로 된 의료지원은 없었다.


피해 규모가 크다 보니 시는 지난 5일 오후 5시 회의에서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정부에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해당 지역 주민들은 주거비 등 일부를 국비로 지원받고, 국세·지방세, 건강보험료·연금보험료, 통신요금 등의 혜택을 받게 된다.


김성훈 인천시 시민안전본부장은 “전기차 한 대로 발생한 화재가 엄청난 피해를 불러왔다”면서 “이재민이 된 주민들 지원에 최우선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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