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
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
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
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거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
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이따금 멈추어서 뒤를 돌아보곤 했다고 한다. 너무 빨리 달려온 탓에 영혼이 쫓아오지 못할까 봐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는 우리들은, 기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고 먼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손바닥 안의 메타버스 플랫폼을 서성거리는 현대인들은 자기 영혼을 어느 정류장에 두고 왔는지 정확히 기억할까? 문명은 속도를 숭배하고, 속도는 풍경을 지운다. 삶이 고해라서 광속으로 탈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천천히’, ‘누비듯이’, ‘홈질하듯이’ 인생의 모퉁이를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달리는 자는 도착하지 못한 자이고, 거니는 자는 이미 도착한 자이다. <시인 반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