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한국 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진행된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급 시상식. 금메달리스트 박태준(20·경희대)은 은메달의 가심 마고메도프(아제르바이잔)를 부축하며 행사장에 들어섰다. 마고메도프는 결승전 초반 다리를 다쳐 결국 기권패했고 시상식 때까지도 절뚝이는 모습이었다. 뒤에서 박태준의 양어깨를 붙잡고 시상대로 향한 마고메도프는 처절했던 승부는 잊고 박태준과 웃으면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한국 태권도에 8년 만의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박태준. 그는 경기 안팎에서 비타민 같은 매력을 발산하며 새로운 태권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스프링 같은 탄력을 바탕으로 한 쉼 없는 발차기로 신바람 나는 경기력을 선보인 박태준은 톡톡 튀는 윙크 세리머니와 상대에 대한 배려까지 빛났다.
세계 랭킹 5위 박태준은 결승에서 세계 26위의 다크호스 마고메도프를 맞아 2점을 따내며 출발했다. 이후 마고메도프가 발차기 도중 정강이 부위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지면서 경기는 급격하게 박태준 쪽으로 기울었다. 1라운드를 9대0으로 따낸 박태준은 2라운드에 13대1까지 달아났고 다시 쓰러진 마고메도프는 결국 기권했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의 12개째 금메달이다.
이 체급 올림픽 금메달은 박태준이 처음이며 한국 남자 선수의 금메달은 16년 만이다. 2021년 도쿄 올림픽 ‘노 골드’로 자존심이 긁혔던 한국 태권도는 대표팀 막내 박태준과 함께 어깨를 폈다.
도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세계 1위 모하메드 칼릴 젠두비(튀니지)와의 준결승전이 중요했다. 팽팽했던 초반 흐름을 깨고 몸통 연타로 1라운드를 6대2로 따낸 박태준은 머리 공격에 잇따라 성공하면서 2라운드를 13대6으로 또 잡아 2대0 승리를 거뒀다. 앞서 16강전에서는 오른발 몸통 공격으로 상대 시선을 유도한 직후 몸을 완전히 비틀어 왼발로 머리를 타격해 3점을 따내는 명장면을 남겼다. 결승 진출 확정 뒤에는 육상 전설 우사인 볼트처럼 활시위를 당기는 세리머니를 하면서 진한 윙크를 날렸는데 관중석의 소속팀 코치를 향한 것이었다고 한다.
결승전에서 상대가 아픈 다리를 잡으며 뒤로 물러날 때도 박태준이 발을 뻗자 일부 관중은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박태준은 “심판이 ‘갈려’를 선언하고 나서 차면 반칙이지만 그전까지는 공격하는 게 정해진 규칙이다. 상대가 포기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배웠다”고 설명했다.
박태준은 이대훈(현 대전시청 코치)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동메달을 따는 장면을 보고 난 뒤 본격적으로 꿈을 키웠다. 이대훈의 모교인 한성고에 입학했고 고3 때 처음 국가대표가 되면서 올림픽을 향해 달렸다. 2022년 월드그랑프리 시리즈와 지난해 바쿠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초신성’ 별명을 얻은 박태준은 올해 2월 올림픽 선발전에서 한국 태권도 간판인 장준을 이기고 파리행 티켓을 땄다. 평소와 달리 오른발을 앞에 두고 공격을 엿보는 승부수를 띄워 그전까지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선배를 넘어섰다. 박태준은 양발 공격이 다 가능하고 스탠스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데다 발차기 기술도 다양해 ‘전략의 태권도’에 능하다는 평가다.
이날 경기장 입장 때까지도 박태준은 이어폰을 빼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들었다고 한다. “오늘 (역사의) 한 페이지를 한 번 만들어보고 싶어서 들었다”는 박태준은 우승 뒤 멋들어지게 공중제비를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