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렇게 허전한가, 왜 이렇게 힘든가 싶을 때는 무엇이 문제인지 역사 속에서 연결을 시켜보세요.”
사회학자 송호근 한림대 석좌교수가 세 번째 장편 소설 ‘연해주’로 돌아왔다. 사회학자로서 한국인의 역사적 정체성의 변화를 탐구한 3부작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 '국민의 탄생'을 펴낸 그는 자신의 학문적 문제의식을 소설로 형상화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봉건과 근대가 맞부딪힌 역사 속 신헌 장군의 이야기를 내세운 '강화도'를 통해 2017년 소설가로 데뷔한 그는 이듬해 한국문학사(史)에서 잊힌 작가 김사량을 다룬 '다시, 빛 속으로'를 두 번째로 펴냈다. 이번 소설의 무대는 연해주다.
8일 송호근 교수는 서울 종로구 관훈클럽신영기금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해주는 어마어마한 조선인의 애환이 묻혀있는 곳”이라며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의미를 가진 독립운동의 현장을 통해 민권의 출발점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주인공인 김경천은 조선 말기에 군인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장교로 복무했다. 휴가 중 우연히 3·1운동을 목격한 뒤 연해주로 망명해 항일 무장투쟁에 헌신하는 인물이다. ‘백마 탄 김장군’이라는 전설로 당시 동아일보를 통해 우리나라까지 활약상이 전해졌다.
저자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고종의 신하였던 김경천이 하나의 시민으로서 자신을 인식해 가는 과정에 집중했다. 그는 “당시 군주의 권한이 있고 그 밑에 인민이 있었다”며 “'제권'에서 ‘민권’으로의 전환이 도처에서 일어나면서 자유를 가진 한 개인으로 변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민권은 시민과 국민의 출발점이다.
그는 “우리나라가 독립 운동을 하면서 내전을 거쳐서 사회주의자나 군부가 장악한 국가들과 달리 공화제를 선택할 수 있었던 데는 연해주, 간도, 중국, 일본, 미국에서 ‘환상형(하나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둘러싼 형태) 독립운동 네트워크’가 컸다”며 “광복 이후 80년을 앞두고 되돌아봐야 할 우리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여러 이념이 공존했던 연해주의 역사를 덮어놓고 외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겪고 있는 사상의 빈곤은 적합하지 않다는 사상을 처음부터 내쳐버린 데서 시작됐다”며 “이념은 충돌하는 게 아니라 공존하는 것인데 어느 순간 이익과 집결되다 보니 충돌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비교적 많은 나이에 소설에 빠진 이에 대해 그는 “사람들 개개인의 애환을 그리는 데는 문학만한 도구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내년 8월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