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논란에 내다팔린 민주화 성지…세법 진작 개정했다면 달랐을까

지난해까지 상속세 절반도 납부 못해
2023년 1년 간 30만 7000원 납부
정부 상속세 개편안 반영했다면…
동교동 사저 상속세액 1억원 이상 ↓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저. 연합뉴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인 김홍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초 민주화의 성지로 꼽히는 김 전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를 100억 원에 매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권 주요 인사를 중심으로 뒤늦게 ‘동교동 사저 지키기’ 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상속·증여세법 개정이 진작 이뤄졌다면 이 같은 논란이 애초에 없었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8일 정계에 따르면 김 전 의원이 미납한 상속세액은 지난해 말 기준 8억 8200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6월 고 이희호 여사가 별세하면서 동교동 사저를 상속받은 김 전 의원은 2020년 5월 제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재산을 공개했는데, 당시 기재한 상속세액 15억 3100만 원의 절반도 채 못 갚은 것이다.


이날 김 전 의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상속세 외에도 부채가 많이 남아 있으며 실거주 중인 서울 반포구 소재 아파트는 대출 빚이 꽤 있고 아내 명의로 된 작은 건물은 10년을 노력해도 안 팔리고 있다”고 상속세 납부에 어려움을 겪었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해 7월에도 거액의 상속세를 갚기 위해 2억 6000만 원 상당의 가상자산 투자까지 했지만 1억 원이 넘는 손실을 봤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전 의원의 주장을 반영하면 결국 2019년부터 5년 동안 여러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십수억 원의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 그가 동교동 사저를 매각한 배경이 된 셈이다. 이에 세무 업계에서는 20년 넘게 바뀌지 않고 과도하게 부과돼온 상속세제를 진작 개편했다면 이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고 짚었다.


예를 들어 김 전 의원이 2019년 당시 가액이 32억 5000만 원이었던 동교동 사저와 8억 원의 노벨평화상 상금을 합해 총 40억 5000만 원을 상속받았다고 가정해보자. 현행 상속세 체계에서 김 전 의원에 부과되는 상속세는 12억 7600만 원 수준이다. 생전 증여나 감정평가 수수료 등 기타 요인은 없다고 가정하고 일괄 공제 5억 원 및 과세표준 30억 원 초과 시 세율 50%, 누진 공제액 4억 6000만 원, 신고 세액 공제 3%를 적용한 금액이다.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6월 26일 오후 국회박물관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 행사 ‘김대중의 성평등 함께 여는 미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2024년 세법개정안에 담긴 상속세법 개정안을 적용할 경우, 똑같은 상황에서 김 전 의원의 상속세액은 약 11억 3500만 원으로 기존보다 1억 4100만 원이 줄어든다. 자녀 공제액이 1인 당 5000만 원에서 5억 원으로 늘어나면 기본 공제액 2억 원을 더해 총 7억 원을 공제받을 수 있고, 공제액을 뺀 과세표준 구간 별 세율도 40%로 기존보다 10%포인트 줄기 때문이다. 동교동 사저만 상속받았다고 가정하면 상속세액은 8억 2500만 원 수준으로 줄어든다. 김 전 의원이 최근 밝힌 상속세 총액이 17억 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상속세 개정 시 최고세율 인하에 따른 상속세 감소 효과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세무 업계 한 관계자는 “김 전 의원은 5년 연부연납을 신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약 5년 동안 상속세를 절반도 다 납부하지 못했는데, 이는 상속세가 과도하다는 방증”이라며 “자녀 공제 확대,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등을 통해 20년 전과 비교해 변화된 부동산 경기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5년 연부연납은 납부해야 할 상속세액이 2000만 원을 초과할 경우 김 전 의원은 연부연납을 신청하면서 관할 세무서에 동교동 사저를 담보로 제공하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관련해 “상속세만 17억 원이 나와 5년에 걸쳐 내겠다고 했고, 국세청에서 근저당을 걸었다”며 “(서울시 측 매입을 통해 사저를 기념관으로 만들려 했지만) 서울시 측에서 규정상 근저당이 걸린 부동산은 손을 댈 수가 없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다만 김 전 의원이 정말로 상속세를 납부할 의지가 있었는지는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국회의원 재산 변동 사항에 따르면 김 전 의원은 2021년에 상속세액을 납부하지 않았고, 2023년에 납부한 금액은 총 8억 8200만 원의 상속세 잔액의 극히 일부인 30만 7000원에 그치기 때문이다. 그 사이 채무를 제외한 김 전 의원의 재산은 2020년 5월 말 기준 67억 7200만 원에서 2023년 말 기준 78억 9600만 원으로 16.6% 증가했다. 김 전 의원은 이번 동교동 사저 매각을 통해서도 수십 억 원의 차액을 실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