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결정 과정에서 대통령이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트럼프의 일부 측근들은 실제로 연준 의장이 대통령과 금리 결정을 협의하도록 하거나 연준을 재무부 감독 아래에 두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이 11월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경제 공황이 닥칠 수 있다고도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8일(현지 시간) 플로리다주의 마러라고 자택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최소한 거기(연준)서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면서 “나는 그래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많은 돈을 벌었고 매우 성공했다”며 “많은 사례에서 내가 연준 사람들이나 의장보다 더 나은 직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발언은 ‘정치적 독립’이 생명인 연준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그의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그가 당선될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에 거센 후폭풍이 닥칠 것을 예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연준은 매우 흥미로운 존재”라며 “종종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일을 조금 늦게 하는 경향도 있다”고 비판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해서도 “조금 너무 일찍, 또는 조금 너무 늦게 움직인다”면서 “그것은 아시다시피 직감인데 나는 그와 종종 다투곤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임 기간에도 자신이 임명한 파월 의장을 수차례 비판했다.
트럼프의 측근 그룹은 실제 집권 시 연준 개혁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앞서 보도했다. 여기에는 연준이 금리 결정을 내릴 때 대통령과 상의하도록 강제하는 방안과 재무부에 연준에 대한 감독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 등이 포함된다.
이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준의 금리 결정과 관련해 ‘압박’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을 하거나 금리 결정이 대통령의 권한인 양 언급했다. 지난달 16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대선 전 금리 인하는 “(연준이)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주장했고 같은 달 18일 전당대회에서는 자신이 집권하게 되면 금리를 내리겠다고 공언했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할 경우 통화정책뿐 아니라 환율정책에도 깊이 개입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측은 미국이 수십 년간 유지해온 강달러가 미국 제조 기업의 수출을 어렵게 한다며 달러의 평가 절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이런 배경에서 트럼프 집권 시 재무부 외환안정기금을 통해 주요 상대국 통화를 매입해 달러 가치를 낮추거나 외국 자본이 미국 자산을 매입할 때 해당 투자금에 대한 세금을 부과해 국제시장에서 달러 수요를 약화시키는 방안 등을 추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집권 시 재무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관세와 환율 정책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인사로 꼽힌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후 처음 기자회견에 나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해리스 부통령의 상승세를 의식한 듯 경제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월가의 뛰어난 사람들이 ‘트럼프가 승리하지 않으면 경제 공황이 올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진심으로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들은 베이컨도 못 사고 음식도 못 사고 재정적으로 죽어가고 있다”면서 “그들은 우리나라에서 끔찍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또 3차 세계대전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러시아와 중국은 우리를 존중하지 않고 북한 김정은은 나를 매우 좋아했으나 이 집단(해리스 진영 추정)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이 지난달 유세 도중 총기 피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총기 소지 권리에는 적극적인 찬성 입장이라는 점도 피력했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해 “해리스가 경쟁에 뛰어든 후 흔들리는 그의 선거 캠페인을 재건하려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