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태권도 남자 80㎏급에서 사상 첫 메달 사냥에 나섰던 서건우(20·한국체대)가 2024 파리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 문턱을 넘지 못한 가운데 오혜리(39) 코치의 ‘엄마 리더십’이 주목을 받고 있다.
9일(현지시간) 서건우는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에서 열린 3위 결정전에서 '덴마크 복병' 에디 흐르니치에게 라운드 점수 0-2(2-15 8-11)로 패했다.
이날 경기 후 오 코치는 취재진을 만나 16강전을 돌아보며 "심판 대신 기술 담당 대표에게 말해야 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뒷일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그대로 끝나면 뭘 해도 뒤집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체대와 대표팀에서 서건우를 지도한 오 코치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여자 67㎏급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앞서 서건우는 16강전에서 호아킨 추르칠을 라운드 점수 2-1(6-8 16-16 14-1)로 이겼다. 최종 승자는 서건우였지만 2라운드가 막 끝난 시점에서 승자가 추르칠로 선언됐다.
1라운드를 내준 서건우는 2라운드 종료와 함께 회심의 뒤차기를 성공하고 상대 감점까지 끌어내며 16-16 동점을 만들었다.
이 같은 경우 회전차기로 딴 점수가 더 많은 선수, 머리-몸통-주먹-감점의 순으로 낸 점수가 더 많은 선수, 전자호구 유효 타격이 많은 선수 순으로 승자를 결정한다.
오 코치는 서건우가 두 차례, 추르칠이 한 차례 회전 공격을 성공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추르칠이 승자가 된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다.
오 코치는 일단 경기가 종료되자 선수들과 경기 관계자들이 모두 떠나면 더는 결과를 바로잡을 기회가 없다고 판단했다. 오 코치는 그 즉시 코트로 뛰어들어 심판을 붙잡고 강하게 항의했다.
이후 양손 검지를 흔들며 잘못된 판정임을 강조한 오 코치는 이번에는 본부석으로 뛰어가 오심이라고 따졌다.
오 코치의 이 같은 대처 덕에 판정은 번복됐다. 시스템상 오류로 회전 공격보다 감점 빈도가 먼저 계산된 점이 확인됐다.
하지만 오 코치는 당시 항의로 인해 세계태권도연맹(WT)으로부터 '경고 및 공개 사과' 징계 조치를 받았다. 규정상 지도자는 심판이 아닌 기술 담당 대표에게 항의해야 한다. 또한 장내 관중들을 상대로 특정한 반응을 유도할 수 있는 행동도 자제해야 한다.
오 코치는 "내가 사과해야 한다"면서도 "선수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뭐든지 해야 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오 코치는 방송 중계에서도 들릴 정도로 "안 맞아도 돼. 자신있게 들어가", "뒷차기! 뒷차기!" 등 소리를 질러 서건우의 경기 운영을 돕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오혜리 코치 걸크러시다", "상대는 2대 1로 싸우는 기분일 듯", "지도자의 코칭이 먹히는 게 짜릿하네", "제자 위해서 발벗고 나선다는 게 이런 거구나" 등의 반응이 나왔다.
오 코치는 "건우가 정말,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며 "좋아하는 콜라도 끊고, 탄산수를 먹이면서 운동했는데…"라고 아쉬워했다.
서건우도 "나 때문에 코치님이 정말 많이 힘들어하셨다. 보답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16강에서 그렇게 해주시지 않았으면 졌을 수도 있다. 발 벗고 나서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이어 "더 열심히 하겠다. 주신 만큼 보답하는 선수가 되도록, 더 나은 제자가 되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