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 사태’를 촉발한 구영배 큐텐 대표가 티몬·위메프 합병 절차에 본격 착수한다. 판매 대금을 받지 못한 셀러들에게 돈이 아닌 주식을 나눠주고 피해를 감내하라는 것이 맞느냐는 비판 속에도 결국 합병 카드를 강행하는 것이다. 다만 ‘울며 겨자먹기’로 전환사채(CB) 전환 신청을 한 일부 셀러들을 제외한 대다수 셀러들의 반발을 감안할 때 합병이 계획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큐텐은 이달 8일 티몬과 위메프를 합병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KCCW(K-Commerce Center for World)’라는 명칭의 신규법인 설립을 신청하고 1차로 설립 자본금 9억 9999만 9900원을 출자한다고 9일 밝혔다. 티몬과 위메프 간 합병은 법원의 승인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우선 신규 법인을 설립해 합병 준비 작업과 사업 정상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셀러들에게 공유한 출범계획안을 보면 합병 법인의 정상화를 위해 자율구제금융펀드를 포함해 2000억 원의 자금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계획안에는 내년 하반기에서 2026년 상반기 사이 기업공개, 매각 추진 등을 추진하겠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구 대표는 합병 카드를 집어든 배경을 묻는 서울경제신문의 질문에 “CB는 ‘업사이드’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하고 회사의 벨류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전략을 가져가야 한다”며 “글로벌 e커머스 플래폼으로 발전해야 만 CB로 전환한 판매자 미정산대금 상환도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법인의 명칭과 관련해서는 “K-commerce라는 명칭은 다른 곳에서 이미 선점한 상태라 KCCW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큐텐에 따르면 이해관계자의 동의를 받아 큐텐이 9400억 원을 투자해 보유한 티몬과 위메프 보유 지분을 100% 감자하고 구 대표는 자신의 큐텐 지분 38% 전부를 합병 법인에 백지 신탁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KCCW가 큐텐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이른바 지주회사가 된다. KCCW를 기반으로 큐텐의 아시아 시장과 위시의 미국·유럽 시장, 샵클루즈의 인도 시장까지 아우르는 글로벌 커머스 플랫폼으로 확장한다는 복안이다.
구 대표는 아울러 판매자도 주주조합 형태로 KCCW에 참여시킨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3000억~5000억 원의 달하는 미정산 대금이 CB로 전환되면 50%의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큐텐 측은 이렇게 되면 판매자와 플랫폼·고객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새로운 e커머스 플랫폼이 탄생하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판매자가 주주로 참여하는 만큼 KCCW는 판매자 중심의 수수료 정책과 정산 정책을 도입하고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배송 완료 후 7일 이내로 정산일을 대폭 단축하는 정산 시스템 구축도 추진한다.
또 사업 정상화와 자본 유치에도 적극 나선다. 큐텐 관계자는 “KCCW가 추가 자금을 확보해야 완전한 피해 복구가 가능하다”며 “KCCW는 사이트 브랜드 변경 및 신규 오픈, 새로운 정산 시스템 구축을 준비하면서 판매자 주주조합 결성, 법원 합병 승인 요청, 새로운 투자자 협상도 동시에 진행해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KCCW는 이날부터 티몬과 위메프 판매자를 대상으로 미정산대금의 전환사채(CB) 전환 의향서 접수를 시작했다. 8월 말까지 모집한 판매자들로 1호 주주조합을 결성한 후 법원에 합병 승인을 요청할 계획이다. 합병이 승인되면 2호, 3호 주주조합이 순차적으로 결성한다는 구상이다.
구 대표는 “티몬이나 위메프 매각으로는 피해 복구가 어렵다”며 “합병을 통해 과감하게 비용을 축소하고 수익성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개편해 신속하게 사업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티몬과 위메프가 합병하면 사업 규모가 국내 4위로 상승한다”며 “기업가치를 되살려야 투자나 인수합병(M&A)도 가능해지고 내 지분을 피해 복구에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구 대표의 합병 방안을 접한 셀러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번 사태로 피해를 입은 한 판매자는 “당장 도산하게 생긴 마당에 돈이 아닌 주식을 준다는 것은 또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다”며 “위기를 순간적으로 모면하기 위한 꼼수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신정권 티메프 피해 판매자 비대위원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안이라 시간끌기가 의심된다”며 "결국 자율구조조정지원(ARS) 프로그램이 좌초되고 그냥 회생절차로 들어가면 "우리도 해보려 했는데 너네가 동의 안해줬잖아"라고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셀러들이 의심중"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