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 車 넘어 '세미콘시티'로 대개조…"3년내 팹 3곳 추가 유치"

[탈중국 신공급망 뜬다]
<1> 印, 中대체재로 급부상
中진출 어려워진 마이크론과 협력
27억弗 투입해 후공정 공장 건설
돌레라선 2년 뒤 웨이퍼 月 5만장
印, 글로벌 칩설계 인재 20% 차지
정부 육성 의지도 강해 본격 추격


지난해 5월 중국 정부가 미국을 대표하는 메모리반도체 제조사 마이크론의 제품에서 심각한 네트워크 보안 문제를 발견했다며 자국 기업들에 마이크론 제품 구매 중지를 명령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6월 인도 정부는 자국 반도체 부흥을 위해 계획한 ‘인도반도체미션(ISM)’ 이니셔티브의 첫 번째 대상으로 마이크론의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마이크론이 보안 문제로 어려워진 틈을 포착한 인도가 재빨리 손을 내밀어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에 마이크론을 합류시킨 것이다. 당시 연간 매출의 25%가량을 중국 본토와 홍콩에 의존했던 마이크론으로서도 인도 투자를 단행하면서 중국을 대체할 시장을 손에 넣게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달 기자가 방문한 인도 구자라트의 주요 산업단지 중 하나인 사난드에는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지난해 9월 첫 삽을 뜬 마이크론의 반도체 후공정(조립·테스트·패키징) 공장 건설이 한창이었다. 가장 가까운 공항인 아마다바드 국제공항에서 35㎞ 거리에 위치한 이 산업단지는 타타모터스, 일본 마루티스즈키 등 주요 제조업의 생산 거점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여의도공원 1.6배 면적인 37만여 ㎡ 부지에 약 27억 달러가 투입돼 조성되는 마이크론 사난드 공장은 지난해 말레이시아 페낭에 문을 연 마이크론의 최첨단 스마트공장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반도체 불모지였던 인도가 단숨에 첨단 반도체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할 생산 거점으로 부상하는 셈이다. 인도 정부의 스케줄에 따르면 당초 올해 말께 첫 번째 ‘인도산’ 반도체가 생산될 계획이었지만 공정이 다소 지연되며 내년 상반기께 프로토타입 생산이 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남쪽으로 100㎞가량 이동해 닿은 돌레라 특별투자구역에서는 인도 정부가 야심 차게 진행 중인 반도체 생태계 조성이 한창이었다. 다양한 산업군이 한데 모인 사난드와 달리 돌레라는 반도체만을 위한 산업 생태계로 꾸려진다. 돌레라 중심에는 인도 타타 일렉트로닉스가 대만 3위 파운드리(위탁 생산) 업체 PSMC와 함께 110억 달러(약 14조 8000억 원)를 들여 짓는 인도 최초의 반도체 팹(공장)이 자리하고 있다. 컴퓨터, 자동차 부품, 통신장비 등에 두루 쓰이는 2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상 범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팹으로 2026년부터 매달 웨이퍼 5aks 장 규모를 양산할 계획이다. 또 다른 인도 업체 CG파워가 일본·태국 반도체 제조사와 협업한 총 10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 규모의 반도체 패키징 공장도 조성되고 있다. 돌레라 곳곳에서는 반도체 완제품을 실어 나를 도로와 철도, 공항이 한창 건설 중이며 협력 업체 등도 잇따라 자리를 잡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인도 정부 관계자들은 앞으로도 2~3년 동안 최소 2~3건의 반도체 팹 프로젝트를 추가로 유치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가 그러하듯 돌레라에 들어선 팹이 또 다른 팹으로 이어지며 인도를 대표하는 반도체 생태계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현지인들은 이미 이 지역을 ‘세미콘시티(반도체도시)’라고 부르고 있다.


인도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진 것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집권한 2014년부터 밀어붙인 ‘제조업 육성책(Make in India)’의 중심축이 자동차·전자제품·스마트폰 등에서 첨단산업인 반도체로 이동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반도체 공급 차질로 자동차 생산난을 경험하면서 반도체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후문이다. 반도체 자급자족을 목표로 삼은 인도 정부는 대규모 인센티브를 바탕으로 2021년 12월 종합 이니셔티브 ‘ISM’을 출범시켰다. 이런 노력이 낳은 결과가 오늘날 구자라트 곳곳에서 펼쳐지는 반도체 팹 건설 붐이다.


물론 뒤늦게 반도체 리더를 꿈꾸는 인도의 여정에 불안한 시각도 적지 않다. 미국과 중국, 대만, 한국, 일본 등 이미 반도체 패권을 쥔 국가들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후발 주자인 인도가 승산이 있겠냐는 회의론이다. 하지만 글로벌 반도체 설계 분야 인재의 약 20%가 인도인이고 미중 갈등이 격화하면서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는 것은 기회 요인이다. 특히 인도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의지가 주목된다. 독립 100년을 맞는 2047년까지 인도를 완전한 선진국으로 만들겠다는 모디 총리의 ‘빅시트 바라트(Viksit Bharat)’ 비전을 완성하려면 반도체는 필수다. 현지에서 만난 글로벌 컨설팅 업체 EY의 한 관계자는 “산업 육성에는 국가 차원의 의지가 중요한데 인도 정부는 반도체에 굉장히 진지하다”며 “모디 총리에 대해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신뢰가 강하고 이에 발맞춰 인도 기업들도 글로벌 실리콘 공급망의 일부가 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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