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이력관리' 2년 전 검토해놓고 미적댄 정부

■ 禍 키운 안일한 판단 도마에
국토부 '전기차 배터리 이력관리' 연구
연구기간·산업계 부담 이유로 시행 밀려
관계부처, 전기차 화재 예방 긴급 회의

인천 연수구 송도동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 전기차 충전소에 12일 전기차 화재 예방법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2년 전 전기자동차 배터리 식별 번호를 통한 이력 관리 방안을 검토했지만 적용 시점을 늦췄던 것으로 확인됐다. 배터리 이력관리제는 배터리에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원인을 빠르게 규명하는 데 필요한 방안으로 당시 정부가 제도 도입을 서둘렀다면 이번 아파트 화재 때 신속한 분석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토교통부는 2022년 한국교통안전공단에 의뢰해 ‘전기차 배터리 이력관리 및 안전인증체계 제도화 방안 연구’를 수행했다.


보고서는 배터리 이력관리제 도입과 배터리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정부의 연구 목적은 배터리 안전성을 확보하고 배터리 재사용을 촉진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배터리 성능과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이력을 추적해 원인을 신속하게 규명하고 품질과 기준에 미달하는 제품의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한 목적이 컸다. 실제로 보고서도 배터리 이력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짚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제도 도입은 늦어졌다. ‘현행 자동차 제작사 및 배터리 제조사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시리얼 번호를 우선 사용’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국가 차원의 표준을 도입하면 연구 기간이 소요되며 산업계 부담 등 행정적·재정적 소요가 예상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력관리제 도입의 필요성은 인정했지만 시행 시점은 뒤로 미룬 것이다.


국제·국내 표준이 이원화하는 데 따른 부담도 고려했다. 향후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논의 중에 있는 전기차 배터리 정보에 관한 국제표준이 제정되면 국내에서 해당 국제표준을 도입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당시에 이력관리제가 신속히 도입됐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아파트 지하주차장 화재 사건이 사회 이슈화하자 뒤늦게 정부가 나서고 있다는 뜻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배터리 이력관리제 도입이 2022년 논의되다가 유야무야된 바 있다”며 “정부가 위험성을 알았고 필요성이 있어 과제를 진행했다면 의지를 가지고 즉시 시행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잇따른 전기차 화재로 인해 소비자들 사이 공포감이 확산하자 정부는 뒤늦게 각종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이병화 환경부 차관 주재로 이날 열린 회의에서는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 지상 전기차 충전기 확대 방안, 과충전 방지 체계 수립 등의 대책이 광범위하게 논의됐다. 특히 화재가 발생한 배터리가 중국산으로 확인되면서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유력하게 검토됐다. 국토부는 전기차 제원 안내에 배터리 제조사를 반드시 포함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13일 국무조정실 주관 회의를 연 뒤 다음 달 초 전기차 화재 종합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배터리 화재 발생을 예방하고 화재 발생 시 신속하게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전기차 화재의 핵심 원인은 과충전 예방 기능이 없다는 것이고 그 기능만 갖춰도 전기차 화재를 확연하게 줄일 수 있다”며 “전기차 포비아가 확산되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는 만큼 중앙정부의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 역시 “배터리 이력관리제는 정부 차원에서 의지를 갖고 서둘렀으면 좀 더 빨리 진행될 수도 있었다”며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발 빠르게 움직일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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