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락장 틈타 ‘스마트 머니’ 국내 펀드로 몰려왔다

◆'8·5 블랙먼데이' 이후 한주간 최대 증가폭
'학습효과'에 우량주식 대거 담아
설정액 48.7조…증시 2600 회복

코스피가 상승 출발해 장 초반 2600대를 회복한 12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지난 5일 ‘블랙 먼데이’ 후 닷새 동안 국내 주식형 펀드에 7700억 원이 유입됐다. 증시 전문가들은 저평가 우량주를 매수하려는 ‘스마트 머니’가 펀드 시장에 들어온 것으로 봤다. 코스피지수는 12일 6거래일 만에 2600 선을 회복했다.


이날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가 하루 만에 8.8% 폭락했던 이달 5일 이후 9일까지 국내 주식형 펀드의 설정액은 48조 7093억 원으로 전주 대비 7730억 원 늘었다. 올 들어 주간 기준 가장 큰 증가 폭으로 국내 주식형 펀드의 올해 증가액(1조 4105억 원)의 54.8%에 해당된다.


반면 같은 기간 해외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2306억 원이 줄었다. 엔비디아 등 인공지능(AI) 관련주 투자 열기 등으로 올해 내내 늘기만 했던 해외 주식형 펀드에서 주간 단위로 처음으로 자금이 빠진 것이다. 글로벌 증시가 급락하면서 국내 채권형 펀드로도 1조 3481억 원이 새로 들어왔다. 염승환 LS증권 리테일사업부 이사는 “한국 증시가 급락해도 주가순자산비율(PBR) 0.9배(2500 선) 이하에서 투자해 실패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며 “그런 학습 효과가 작용하면서 국내 주식형 펀드에 자금이 쏟아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날 코스피는 1.15% 오른 2618.30에, 코스닥은 1.08% 상승한 772.72에 각각 마감했다. 특히 외국인과 기관은 코스피에서 각각 761억 원, 1473억 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이며 공히 2거래일 연속 순매수했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 등이 완화하면서 증시 전반의 공포 심리가 잦아졌지만 보수적 대응을 주문했다. 이웅찬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코스피가 2600 선에 안착한 만큼 국내 증시가 저평가돼도 추세적 반등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며 “미국 7월 소비자물가지수(14일 현지 시간) 등 지표를 잘 챙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증시발작 틈타 국내 실적주 줍줍…해외펀드선 올 첫 2300억 빠져



[韓펀드로 몰린 '스마트 머니']



◆ 주식형에 닷새간 7700억 유입


엔 캐리 불안 진정…공포심리 완화


환율 등 감안땐 실적 상승 가능성


안전자산 채권형에도 1.3조 몰려


변동장세에 추가 자금유입 미지수



국내 증시가 속절없이 무너졌음에도 국내주식형 펀드의 설정액이 올 들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은 그만큼 국내 증시가 보유한 경쟁력보다 낙폭이 컸다고 판단한 투자자가 많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는 해외주식형 펀드의 자금 추이에서도 드러난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한 주(8월 5~9일) 해외주식형 펀드의 설정액은 2306억 원 감소했다. 올해 해외주식형 펀드의 설정액이 주간 기준으로 줄어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서학개미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는 북미 주식 관련 펀드 설정액이 941억 원으로 가장 많이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 패닉 셀링이 지나쳤다고 보고 해외주식형 펀드에서 자금을 빼낸 후 국내주식형 펀드로 갈아탄 수요가 적지 않을 것으로 봤다. 올 들어 상승 폭이 컸고 낙폭은 상대적으로 작았던 미국 증시보다는 반도체·바이오·전력·조선 등 실적 우량주를 불문하고 무차별적으로 주가가 크게 빠진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게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추가 수익을 얻는 데 낫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 중앙은행이 올해 정책금리를 더 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일본 현지에서 나온 것도 시장의 공포 심리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줬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엔화 차입 자산의 급격한 축소로 수급의 스윙이 지난주 급격한 조정을 만들었지만 속도 자체는 정점을 지난 것으로 보인다”며 “레벨 다운한 주식시장 가격은 완만한 속도로 회복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짚었다. 이선엽 신한투자증권 영업부 이사도 “아무리 싸다고 해도 더 빠진다면 문제지만 이번 하락이 미국 경기 침체 우려 때문이 아니라고 판단한 스마트 머니가 유입됐다”며 “현명한 투자자들이 그간 가격이 많이 올라서 못 산 좋은 주식을 저가 매수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주요 상장사의 이익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점 또한 저점 매수의 근거로 꼽힌다.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삼성전자(005930)는 2분기 10조 4439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는데 이는 증권가 평균 추정치(8조 3078억 원)를 25.7% 웃도는 수준이다. SK하이닉스(000660)도 5조 4685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시장 추정치를 5.3% 상회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 등 바이오·방산 업종 대장 종목 역시 증권가 평균 추정치를 각각 41.8%, 66.2% 웃도는 ‘깜짝 실적’을 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환율 여건 등을 감안했을 때도 3분기나 올해 연간 실적이 기존 전망치보다 상향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진 상황은 아니라 지금은 실적주 위주로 접근하는 것이 유효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이사 역시 “1분기에 이어 2분기 어닝시즌도 전망치를 상회하면서 올해 코스피의 영업이익과 순이익 전망치가 모두 상향 조정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가 바닥을 다졌다고 보면서도 추세적인 반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추가적 상승을 주도할 동력이 부재한 데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엔비디아 실적 발표 같은 이벤트들이 다수 예정돼 있어 당분간 그 결과에 따라 변동성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미 경기 침체가 현실화하면 국내 기업 실적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 그런 만큼 해외주식형 펀드에서 국내주식형 펀드로 자금 유입이 지속될 가능성은 낮은 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경기침체 가시성이 높아지더라도 현재 코스피는 충분히 저평가돼 있다”면서도 “급격한 가격 조정이 일단락된 후에는 단기 등락이 불가피하고 이런 경우 코스피는 2500~2530선을 전후로 지지력 확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낙폭 과대주 중심의 접근이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해외 주식과 채권 투자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미국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하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한국과 미국의 국고채 금리가 빠르게 내렸다. 이에 국내 채권형 펀드의 설정액은 이달 5~9일간 1조 3481억 원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국내주식형 펀드 증가액(7730억 원)보다 5751억 원 많은 규모다. 김태홍 그로쓰힐자산운용 대표는 “물가를 제외하고 실업률 지표가 나오는 시점과 엔비디아의 실적이 발표되는 시점은 모두 이달 말이라 해외 주식과 채권 등 다른 자산에 대한 투자 전략은 그 일정들을 모두 지켜본 후 정하는 게 안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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