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범 칼럼] 유럽과 미국의 경제력 격차가 주는 교훈

박철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유럽, 낮은 R&D 지출·과한 규제 등 더해
저숙련 인력 유입이 美보다 더딘 성장 초래
韓도 규제·노동시장 개혁 경제활력 찾아야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리기 때문인지 유럽 국가들의 올림픽 성적이 좋다. 개최국인 프랑스와 영국·이탈리아·독일·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의 메달 수를 합하면 스포츠 강국인 미국 또는 중국을 압도적으로 상회한다. 하지만 경제력을 보면 유럽은 미국에 훨씬 뒤처져 있다. 물론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미국보다 훨씬 더 가파른 에너지 가격 상승의 여파를 겪은 탓도 있지만 미국과 유럽의 경제력 격차는 최근의 현상이 아니다. 1960년대 비슷했던 1인당 소득이 미국은 연 3.4% 성장을 보였지만 유럽연합(EU)은 연 1.6%에 그쳐 2010년 미국의 1인당 소득은 EU보다 43%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EU의 1인당 소득이 6만 달러로 예상되는 2035년 미국의 1인당 소득은 9만 6000달러일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최근 경제 반등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미국과 유럽의 경제력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수도 있다.


최근 경제학계에서는 미국과 유럽의 경제력 격차가 벌어지는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세계경제의 주축인 두 지역의 장기간 성장률 차이를 야기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소득의 변화를 노동 투입의 변화, 자본 투입의 변화 그리고 생산성의 변화로 나눠 살펴보면 미국과 유럽의 성장률 차이는 대부분 생산성과 노동 투입 변화의 격차로 설명된다. 유럽의 생산성 향상이 미국에 비해 더딘 구조적 요인으로는 미국 기업들에 비해 낮은 연구개발비 지출, 과도한 시장 규제, 미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벤처캐피털 등 신생 기업들을 위한 자본시장 규모의 차이, 이민자 유입은 많지만 미국에 비해 저숙련 노동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점 등이 꼽히고 있다.


최근 생산성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테크놀로지 산업에서는 격차가 더욱 두드려져 2023년 포브스지가 발표한 세계 20대 테크놀로지 기업 중 유럽에 기반을 둔 회사는 3개사로 11개사에 달하는 미국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노동 투입 변화의 격차를 설명하는 구조적 이유로는 유럽은 미국보다 인구 고령화 정도가 높아 생산가능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점, 미국에 비해 저숙련 노동자가 많이 유입된다는 점 그리고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라는 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유럽의 경직적인 노동시장은 코로나19와 같은 경제적 충격이 왔을 때 부문별 노동자 이동과 재배치를 어렵게 해 경제 반등을 저해한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기간 중 유럽의 부문별 노동자 재배치 정도는 미국의 3분의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력 격차를 야기한 원인에 대한 경제학계의 논의는 한국 경제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높은 생산성 향상을 얻기 위해서는 시장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없애야 하는데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불필요한 규제 철폐를 구호로 내거는 것을 보면 한국 경제에는 아직도 규제가 많다는 것을 방증한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기업들은 연구개발비 지출을 아끼지 말아야겠지만 정부도 연구개발 지원을 삭감했다가 복원하는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상당수가 저숙련 노동자인데 고숙련 노동자를 유치하고 활용하기 위한 정책 정비도 필요하다.


유럽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와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낮은 저출산율로 표현되는 한국의 인구구조는 경제성장에 있어 노동 투입의 기여도를 낮출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외국 유학생들의 경우 졸업 후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이어가도록 지원하는 비자·이민 정책 정비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41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고용 탄력성 지수가 37위인 한국의 노동시장은 1위인 미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보다 규제가 과도하고 경직적이다. 유럽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지나치게 경직적인 노동시장 구조는 경제의 큰 충격이 왔을 때 부문별 노동자 이동과 재배치를 어렵게 하고 유럽의 경우처럼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동시장 규제에 대한 개혁도 필요하다. 유럽과 미국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을 바탕으로 한국 경제가 활력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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