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이후 미국 대공황의 불길이 번지자 비난의 화살이 중앙은행으로 쏠렸다. 위기 대응은커녕 무기력하게 재무장관의 지시만 기다린 중앙은행에 대한 비판은 1935년 은행법 개정을 통한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지배구조 개편으로 이어졌다. 개편을 주도한 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신임 하에 1934년 7대 연준 의장으로 취임한 매리너 에클스였다. 이를 계기로 연준은 지역 연방은행들에 대한 통제권을 갖게 됐고 재무장관 등 행정부 각료를 의사결정에서 제외하는 등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됐다.
공간도 독립했다. 이전까지 재무부 건물에서 열리던 연준 이사회는 1937년부터 워싱턴DC 컨스티튜션 에비뉴에 설립된 본부 건물에서 열리게 됐다. 에클스는 1948년 의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이사직을 맡아 연준의 독립성 확립에 기여했다. 연준이 재무부로부터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펼 수 있게 된 1951년 ‘재무부-연준 협정’은 해리 트루먼 행정부와의 첨예한 갈등 끝에 그가 일궈낸 산물이었다. 1982년 미 의회는 연준 시스템의 기초를 닦은 그의 이름을 따서 연준 본부 건물을 ‘에클스 빌딩’으로 명명했다.
에클스가 어렵사리 확립한 연준의 독립성이 다시 화두에 올랐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연준에서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며 재집권 시 연준의 금리 결정에 개입할 것임을 시사했다. 발권력을 갖는 중앙은행이 정치에 종속되면 통화정책의 신뢰가 무너지고 경제가 망가질 수밖에 없다. 1970년대 연준이 정치 논리에 휘둘린 탓에 물가 상승률이 10%대 중반으로 치솟았던 사례도 있다.
22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기준금리 인하 압력 수위를 높이는 우리나라의 정부와 여당도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을 경계해야 한다. 물론 경기와 물가, 집값, 부채 문제가 뒤얽힌 경제의 고차방정식을 풀려면 통화·재정 정책의 유기적 조화는 필수다. 복합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와 한은의 적정한 거리 두기와 긴밀한 정책 조율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