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도서 발행 부수 10년來 최저…"될만한 작품만 출간"

■저출생 직격탄 '사라지는 그림책'
지난해 1532만부 발행 19% 뚝
가격 민감도 탓 인상도 쉽지않아
인지도 높은 국내작가 위주 선별
수상작이라도 번역서는 크게 줄여
판로막힌 중소 출판사 경영난 허덕

지난 3일 서울 광화문 광장 야외도서관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책을 읽고 있다. /정혜진기자


“예전에는 해외 수상작의 경우 웬만하면 다 번역해 출간했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될 만한 작품’ 위주로 선별해서 출간할 수밖에 없어요.” (아동 출판사 비룡소 관계자)


14일 출판업계에 따르면 저출산 여파로 어린이 독자들이 크게 줄면서 아동 출판사도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누렸던 반짝 특수조차 자취를 감추면서 아동 출판사들이 생존을 위해 출판 공식을 대폭 재편하고 있다.


최근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내놓은 ‘2023년 출판 생산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출판사에서 발행된 아동 도서 부수는 전년 대비 18.9% 감소한 1532만 부로 최근 10년 중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전체 도서의 발행 부수가 지난해 7020만부로 전년 대비 3.7%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감소세가 5배 이상 크다. 팬데믹 첫 해인 2020년 발행 부수가 1920만권으로 집계됐는데 아동 도서 4부 중 1부가 매대에서 사라진 셈이다.





가장 큰 원인은 출산율 감소로 인한 아동 독자층 감소다. 아동서의 주축은 유아용 그림책과 초등학교 저학년 창작 동화로 꼽히는데 이 분야의 수요독자층이 가장 빠르게 줄고 있다. 내년에 초등학생이 되는 2018년생부터 합계출산율이 1명 밑으로 떨어져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떨어졌다. 잠재 수요층의 감소는 불보듯한 상황이다.


‘아동서는 경기 침체도 피해간다’는 이야기는 이젠 구문이다. 필수 도서로 꼽히는 학습서의 경우 지난해 발행 부수가 11.8% 늘었고 평균 정가(가격)도 1만9904원으로 전년 대비 20.2% 올랐다. 반면 아동 도서의 경우 가격 민감성이 높아 평균 정가가 7.5% 늘어난 1만3631원에 그쳤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팬데믹 때 종이 가격이 40% 가까이 상승했지만 아동 도서는 1만3000원대의 장벽이 높다”며 “전면 컬러에 다양한 시도를 해야 엄마들의 안목을 맞출 수 있지만 가격은 올릴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출간되는 아동 도서의 다양성도 줄고 있다. 지난 해 발행된 아동 도서의 종수는 7662개로 전년 대비 9.3% 감소했다. 특히 출판사들은 인지도와 판매고가 높은 국내 작가들 위주로 우선순위를 매기고 외국 책의 번역 출판을 크게 줄었다. 지난해 아동 도서 번역서 발행 종수는 1974개로 2021년(2583개)과 비교하면 24% 가량 감소했다.



/정혜진기자

어려운 상황은 재무제표상으로도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비룡소의 경우 팬데믹 기간에는 모기업인 민음사보다 높은 매출을 기록했지만 지난해 매출이 185억원으로 전년(246억원) 대비 25%가 빠졌다. 같은 기간 영업 이익은 21억원으로 전년(42억원) 대비 반토막이 났다. 아동 도서 매출이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시공사는 지난해 매출이 187억원으로 전년 대비 12% 빠졌다. 영업손실은 88억원으로 전년(3000만원) 대비 크게 늘었다. 길벗스쿨 관계자는 “'전천당' 시리즈 등 스테디셀러도 예전에 비해서 덜 팔리는 추세”라며 “최대한 인지도 높은 시리즈나 인플루언서 등 팔릴 만한 책들을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각 교육청과 지자체의 도서 구입 예산이 감소한 가운데 가정과 학교로의 판매로도 막히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종로구의 한 초등학교의 경우 도서구입비가 전년 대비 200만원 가량 줄었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팬데믹 때는 학교마다 특정 책을 구입해 함께 읽는 ‘온 책읽기’가 활성화됐는데 예산도 줄고 팬데믹도 끝나면서 이 효과도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전방위적으로 판로가 막히다 보니 몇년 간 늘어난 소규모 아동 출판사들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2년 전 대비 매출이 절반이 됐다는 목소리가 많다”며 “그림책은 좋은 책을 한 권 만들려면 2~3년은 걸리고 초기 투자 비용도 높아 출간 종수를 줄이는 선택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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