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호흡재활을 앞둔 다른 환우분들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최근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에 3000만 원의 후원금과 함께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편지를 보낸 주인공은 ‘연세대 호킹’으로 불리는 신형진씨. 태어날 때부터 몸 전체가 서서히 마비되는 척수성근위축증(SMA·Spinal Muscular Atrophy)을 앓았던 신씨는 연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지 9년만인 2011년 2월 졸업장을 받았다. 최근에는 희귀 질환을 딛고 애니메이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 '라프텔'을 공동 창업해 정보기술(IT)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 기부금은 18년 전 강성웅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장과 인연을 맺은 신 씨가 7년치 급여를 저축해 모은 돈으로 알려졌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본원 대회의실에서 기부금 전달식을 갖고 호흡재활센터에 기부금을 전달했다고 17일 밝혔다. 행사에는 구성욱 강남세브란스병원장을 비롯해 신씨의 주치의인 강 센터장과 이영목 강남세브란스병원 기획관리실장, 이정일 연세의료원 발전기금사무국 강남부국장 등이 참석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행사 당일 오지 못한 신씨를 대신해 어머니 이원옥 여사가 기부금을 전달했다. 이번 기부금은 중증 호흡 질환자들의 치료에 쓰일 예정이다.
SMA는 근육을 조절하는 신경세포의 퇴행성 변화로 인해 대칭적인 근력저하와 근육 위축을 일으키는 유전질환이다. 전형적인 SMA는 출생아 6000~2만4000명 중 1명 꼴로 발생할 정도로 드문데 운동신경 기능에 필요한 SMN 단백질의 결핍과 관련된 SMA의 세부 유형만 따져도 4가지라 치료가 까다롭다. 문제는 점차 병이 진행되면 호흡을 담당하는 근육마저 약해져 숨쉬기조차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결국 기관 절개를 통해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게 되는데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강 센터장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호흡재활 치료는 SMA 환자의 희망이다. 호흡 장애를 일으키는 증상을 완화하고 합병증 발생 가능성을 낮추며 환자가 숨을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돕는 치료를 말한다. 호흡 근육을 단련해 환자가 스스로 호흡하도록 돕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관 절개를 피할 수 있어 학업을 포기했던 환자가 재개하거나 기업에 취직하는 등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
신씨 역시 호흡재활을 계기로 학업을 이어간 사례다. 20년 가까이 강남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와 연을 맺으며 인공호흡기 사용 시간을 조금씩 줄여왔다. 온몸이 마비된 상태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눈동자 뿐이지만 호흡재활 치료로 박사 과정을 마쳤고 공동 창업으로 애니메이션 OTT 회사를 일궈냈다. 호흡재활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겐 희망 그 자체다.
신씨는 서면을 통해 “살아오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면서 “제가 받은 사랑을 주변에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강 센터장은 “호흡재활이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또 다른 희망을 키우는 상황이 감격스럽다”며 “힘든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역경을 이겨낸 신씨의 이야기가 신경근육계 희귀난치질환을 향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2008년 10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지원으로 국내 첫 호흡재활센터를 개소한 이래 현재까지 희귀난치성 신경근육질환자 1만 6000여 명을 지원했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야 하는 중증 환자들도 호흡재활을 통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당당히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매년 2월 환자들의 졸업과 입학을 축하하는 ‘호킹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