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서구 근대문명의 자양분 된 '동유럽'

■굿바이, 동유럽
제이콥 미카노프스키 지음, 책과함께 펴냄


제1차 세계대전부터 냉전과 공산주의의 몰락을 거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우리가 생각하는 동유럽은 서유럽 선진 국가들에 비해 어딘가 모자라고 가난한, 폐쇄적인 국가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기원전부터 복잡한 민족관계가 존재했고 지금도 20여개 나라가 자리잡고 있는 만큼 이 지역이 혼란한 것은 맞다. 하지만 동유럽 출신의 작가이자 역사학자인 제이콥 미카노프스키는 “동유럽에 대한 편견들은 서유럽 중심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며 동유럽이라는 개념을 해체하고자 한다.



유럽의 문화에 풍부한 토양을 제공했던 체코의 프라하 시내 풍경. /서울경제 DB


미카노프스키는 신간 ‘굿바이, 동유럽’에서 1000년 이상의 시간대를 다루며 동유럽의 신앙, 제국과 민족, 그리고 격동의 20세기를 공들여 소개한다. 너무나 다양한 개성들을 보유했기에 동유럽을 쉽게 설명하기란 어렵지만, 책은 이러한 다양성을 핵심 키워드로 삼아 복잡한 동유럽 지역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저자는 “동유럽의 가장 핵심적이고 확실한 특징은 다양성”이라며 “서유럽과 구별되고, 유라시아와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프라하 시내. 연합뉴스

이 지역은 종교부터 다양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종교에서부터 지역의 갈등이 시작됐다. 책은 지역의 토속신앙과 기독교, 유대인들과 무슬림, 이교도들을 소개하며 갈등의 양상을 보여준다. 저자는 “다른 신앙과 종교가 이렇게 근접해 있는 것이 조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다양한 종교는 수많은 국가를 낳았고, 이는 이념 갈등으로도 이어졌다. 동유럽의 수많은 가족이 이로 인해 갈라져 이산가족이 되었다.


책은 서두에서부터 “‘동유럽’같은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동유럽은 외부 사람들이 편의적으로 만들어낸 말로, 고정관념이라는 올가미를 감추기 위해 사용되는 말이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애초에 동유럽은 유럽으로 취급받지도 못했다. 중세 유럽은 가톨릭 교회의 세계였는데, 동유럽은 정교회가 득세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무시받고 박해받아왔던 이 지역의 고난은 20세기부터 정점에 달한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이 모두 이 곳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세계의 화약고’가 되어 버렸다. 종전 후에는 소련 산하에서 이념 대립의 최전선에 서기도 했다. 소련이 분해된 이후에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자리잡는 과정에서 수많은 피가 흘렀다. 유고와 세르비아, 코소보에서는 인종 청소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홀로코스트 박물관. AFP연합뉴스

이 지역 사람들은 이제 자신을 더 이상 동유럽인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체코와 오스트리아, 헝가리 같은 국가들은 자신들을 ‘중부 유럽’ 혹은 ‘중유럽’ 국가로 칭한다. 긴 세월 동안 아픔의 역사를 이겨내 온 동유럽인들에게 동유럽이라는 꼬리표는 꼭 떼어야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의 제목 ‘굿바이, 동유럽’ 역시도 그런 모든 것들을 탈피하자는 의미를 내포한 것일 것이다.


겉보기에는 상처가 많아 보이지만 동유럽은 아름답고 찬란한 곳이다.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동유럽은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만나볼 수 없는 독특한 향취를 내뿜는다. 저자도 “동유럽은 단지 희생의 장소가 아니라 고유한 문명을 가진, 끝없는 매력과 경이를 지닌 장소”라고 이야기한다. 강대국과 제국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매력을 보존해 온 동유럽은 우리 나라의 역사도 떠오르게 하며, 사상과 이념, 종교, 사회 갈등이 팽배한 우리 사회가 다시 들여다 봐야 할 곳이기도 하다.



베오그라드 시내. 연합뉴스

블룸버그는 이 책을 올해의 책 중 하나로 선정하며 “지역의 모순을 훌륭하게 포착했다”고 평했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지역의 정치적, 문화적인 지리적 특성을 재창조했다”고 호평했다. 3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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