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 언어정담] 따스한 아랫목이 사라져가는 사회

작가
기성세대 이기심에 청년들 좌절
너른 마음으로 땀·눈물 닦아주고
응원 보내는 '정서적 버팀목' 돼야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안세영 선수가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미처 온 국민이 기쁨을 누릴 틈도 없이 ‘선수와 협회 사이의 갈등’이 크게 이슈화됐다.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보는 것 같았다. 오직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기를 바라며 부상의 고통을 견디고 맹훈련을 거듭했다는 안 선수의 고백이 못내 가슴 아팠다. 누군가 그토록 힘들게 금메달을 따지 않아도 우리는 언제나 젊은이들의 간절한 목소리에는 귀 기울여주어야 한다.


안 선수의 고군분투를 바라보며 나는 우리 사회가 ‘아랫목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랫목이란 춥고 힘들 때마다 몸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던가. 학교에 다녀오면 어른들이 ‘아랫목으로 어서 들어오라’며 이불 속으로 나를 밀어넣던 기억이 난다. 추운 겨울날이면 바로 그 아랫목에서 한 이불을 덮어쓰고 온갖 이야기꽃을 피우던 어른들이 그립다. 우리는 그런 따스함 속에서 성장했고 아랫목은 단지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든든한 정서적 버팀목’을 상징하는 말임을 알았다. 힘들 때 하소연도 할 수 있고, 함께 의논해 더 나은 쪽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정서적 쉼터’야말로 아랫목의 은유적 의미가 아닐까.


영광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들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저마다 분투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을 ‘우리 마음속 따스한 아랫목’으로 초대하여 속삭이고 싶다. 여러분의 수고를 결코 평가절하하지 말라고. 여러분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에서 정말로 고생 많이 했다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용기를 내어 세상을 바꾸자고 응원하고 싶다. 그리고 기성세대들이 젊은이들을 위한 ‘따스한 아랫목’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기성세대는 후속세대들이 그들과 똑같이 고생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메달을 따지 못한 모든 선수들의 눈물,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못한 선수들의 눈물까지도 닦아줄 수 있는 따스한 아랫목이 필요하다. 지원과 응원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선수들에게 금메달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오직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교육·과학·의학 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젊은이들의 열정과 패기’를 짓누르는 기성세대의 이기심을 반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의 피·땀·눈물을 이해해주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성과주의에 미쳐 있다. 모든 정서적 아랫목들, 즉 돌봄과 공감과 응원과 소통의 장이 사라지고 있다. 젊은이들의 눈물과 땀방울,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 없는 아픈 사연을 들어줄 수 있는 기성세대의 너른 마음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진정한 아랫목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리더는 주판알을 굴리며 이득을 계산하는 이들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가장 아픈 마음까지 끌어안는 넉넉한 품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한다. 타인의 그림자·슬픔·트라우마까지 끌어안을 줄 아는 사람만이 우리 사회의 진짜 리더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