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은 배달원이 들춘 中 청년취업난의 민낯 [김광수 특파원의 中心잡기]

실업률 증가, 대졸자도 배달원으로 내몰려
7월 청년 실업률 17.1%…새 기준 최고치
‘탕핑’ 문화 확산에 중국 미래 불안감 확산
중국의 우월함만 강조할 뿐 해법은 안 보여

중국 항저우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배달원이 실수로 난간을 망가뜨리자 아파트 경비원이 배달원의 무릎을 꿇게 하고 사과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중국에서 배달원 수백 명이 아파트 관리실로 몰려가 경비원의 공개 사과를 요구했던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음식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이 이달 12일 저장성 항저우의 아파트 단지에서 잔디밭 난간을 망가뜨린 일이 발단이었다. 경비원은 배달원의 오토바이 열쇠를 빼앗고 손해배상을 요구했으며 무릎을 꿇어야 키를 돌려주겠다고 협박했다. 배달원은 무릎을 꿇고 200위안(약 3만 8000원)을 물어준 후에야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해당 사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져나가자 현지 배달원들이 문제의 아파트로 몰려왔고 배달원을 고용한 업체에서 난간 수리비를 대신 물어주며 사태가 일단락됐다.


배달원 사건의 이면에는 중국 청년층의 취업난이 자리하고 있다. 해마다 1000만 명이 넘는 대졸자가 쏟아지지만 경기 침체로 고용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으며 청년들은 배달 라이더로 내몰리고 있다. 이는 통계로 잘 드러난다. 16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중국의 7월 청년 실업률이 17.1%라고 밝혔다. 전달의 13.2%에서 3.9%포인트나 오른 수치다. 지난해 12월 중국 당국이 청년 실업률 통계 방식을 바꾼 이후 최고치다. 앞서 중국은 청년 실업률이 지난해 6월 21.3%까지 치솟자 통계 발표를 돌연 중단했다. 이후 재학생을 실업률 통계에서 제외한 새로운 청년 실업률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나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기존 통계 기준 청년 실업률까지 넘어설 가능성이 적지 않다. 지난해 한 교수가 배달원 생활을 체험한 뒤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하루 12~14시간씩, 한 달에 26~28일을 일해야 월평균 6000위안(약 113만 원)을 손에 쥘 수 있다.


취업난을 피해 대학원 진학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점도 우리나라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쳤던 상황과 비슷하다. 지난해 중국의 대학원생 정원은 76만 명이었는데 지원자는 약 474만 명으로 경쟁률이 6대1을 넘었다. 대졸자 1160만 명 중 40% 이상이 대학원 진학을 희망했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년 전부터 중국 젊은이 사이에서는 ‘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탕핑’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최근 미국 뉴욕타임스는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 새 흉내를 내는 셀피가 유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젊은이들이 잠시나마 불안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고 새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다는 열망을 담은 몸부림이라는 분석이다. 사회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탕핑의 연장선으로 해석했다.


중국 경제를 바라보는 불안감이 중국인들, 특히 젊은이 사이에서 확산된 영향이 크다. 중국 당국은 올해 ‘5% 안팎’의 경제성장률 목표 달성을 위해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움츠러든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경제 회복 해법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강조하고 있는 ‘신품질 생산력’을 재차 반복했을 뿐 한 달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국가의 중국을 향한 견제가 갈수록 거세지는 상황에서 중화사상으로 똘똘 뭉친 중국 젊은이들마저 중국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런데도 중국 당국은 현실에는 눈감은 채 우월함만을 강조한다. 청년들의 나약함을 채찍질하면서 외부의 견제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관영매체들은 최근 폐막한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남자 수영의 판잔러, 여자 테니스의 정친원 등이 서방이 장악하던 종목에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했다며 연일 목소리를 높였다. 젊은이들의 탕핑 문화를 꼬집지만 정작 중국 당국이 손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탕핑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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