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병상을 찾으려고 전국 병원을 헤매던 코로나 사태 때보다 더 심각하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체 전공의 91%가 수련을 포기한 지 반년이 된 가운데 의료체계가 흔들리며 응급환자를 받아 치료해야 할 응급실의 위기로 확산하고 있다.
의정 갈등 상황과 여름철 질병까지 겹치며 과부하가 걸린 것인데, 음주 후 속이 쓰려서, 손톱이 살짝 들려서 응급실을 찾는 경증환자까지 많은 실정이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정 갈등 이후 지방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응급실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세종충남대병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부족으로 이달부터 응급실 진료를 축소 운영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응급실 진료를 중단하거나 축소 운영하는 방식이다.
충북대병원 응급실은 6명의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4명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등 총 10명이 번갈아 가며 당직을 서는데, 최근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이 각기 휴직과 병가를 내면서 당직근무 체제를 더는 유지할 수 없게 됐다.
경북대병원 응급실은 의료진 부재로 이비인후과 응급 진료가 불가능하다. 성형외과와 산과, 피부과, 안과 등에서도 진료가 제한됐다. 영남대병원 응급실도 의료진 부재로 치과, 외과, 피부과, 성형외과 등 환자 수용이 불가능한 등 여러 과에서 진료가 제한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 현재 전체 응급실 408곳 가운데 병상을 축소한 곳은 25곳이다.
이런 와중에 경증환자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 응급실 평균 내원환자는 1만9천명을 넘어 의정 갈등 이전 평상시의 108% 수준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경증환자는 평상시의 101% 수준을 회복한 상태다.
환자 본인이나 보호자가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모르기 때문에 응급실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과거 병력이 없는 신체가 건강한 성인들마저 특별한 외상이 없는 상태에서 응급실 문을 두드리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응급의학회 관계자는 "고령이 아닌 20∼40대 중 평상시 특별한 질환이 없던 건강한 성인 중에서도 응급실에 오시는 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물론 두통 때문에 응급실에 왔다가 검사 후 지주막하 출혈인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밤새 술 마셔서 속이 쓰리다며 오시는 분, 모기에 물려 피부가 붓고 간지럽다고 오시는 분들도 정말 많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경증환자의 응급실 내원 증가 문제를 관리하고자 응급실에 걸린 부하를 줄이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최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응급의료체계 유지 대책을 논의하고, 인건비와 당직 수당을 계속 지원해 응급실 인력을 확보하기로 했다.
전문의가 부족한 권역·지역응급센터에는 공중보건의사와 군의관을 배치하기로 했다. 나아가 경증환자가 권역응급센터 등 응급실을 찾을 경우 의료비 본인 부담을 단계적으로 인상한다.
높은 의료 접근성과 낮은 의료비 부담 덕분에 환자들이 비교적 쉽게 응급실을 내원하게 됨으로써 생기는 의료진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이런 정부 방침을 환영하면서도 정책 실현 의지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응급의학회 관계자는 "응급실 진료비가 워낙 싸다 보니까 다음 날 외래 진료를 통해서도 해결할 수 있는 가벼운 증상으로도 응급실에 오는 분들이 많다"며 "경증환자의 경우 응급의료 비용을 지금의 2∼3배로 올리거나, 아예 100% 부담하게 하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