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안정 지름길 놓쳐…美 대선 앞두고 대응전략도 부재

[CPTPP 尹정부 내 가입 무산]
산업부, 아직 국회에 보고 못해
선거일정 고려땐 재추진도 부담
"FTA 확대·IPEF 활용" 계획에
전문가 "보호무역 대책 안보여"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사이토 겐 일본 경제산업상이 지난 4월 도쿄 경제산업성에서 회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올 5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의 미래’ 국제 콘퍼런스에서 “한일 경제권을 만들면 6조 달러(약 8184조 원)가 넘는 시장이 만들어질 것”이라며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서 나아가 한일 자유무역협정(FTA)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CPTPP는 역내 개방 수준이 높고 회원국 내에서 생산된 재료로 만든 제품에 무관세를 적용해주기 때문에 안정적인 공급망과 생산라인 구축에 유리하다. FTA 미체결국인 일본·멕시코와 간접적으로 FTA를 맺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의 생각도 비슷하다. 올 초 한경협은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와 한국의 CPTPP 가입 추진을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양국 경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재계의 이 같은 바람은 통상 당국이 CPTPP 가입 방침에서 후퇴하면서 물거품이 될 위기에 빠졌다. 최소한 윤석열 정부 내에서는 가입 추진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번 로드맵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올해는 추진이 불가능한데 내년 보궐선거와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통령 선거 일정을 고려하면 이를 재추진할 여력이 없다.



사진 제공=연합뉴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는 CPTPP 가입 신청을 위한 마지막 단계인 국회 보고조차 하지 못했다. 제1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CPTPP 가입에 비협조적이기 때문이다. 야당은 농산물 시장 개방에 따른 농가의 반발을 걱정하고 있다. 반일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야당 입장에서는 일본 주도의 CPTPP가 달갑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친일·반민족 행위를 옹호하는 이들의 공직 임명을 제한하고 독도 영유권을 부정하는 발언을 처벌하는 입법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힐 정도다.


반대로 정부 입장에서는 CPTPP를 밀어붙이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4월 총선 이전에는 선거 결과에 따라 CPTPP를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면서도 “총선 이후 급격히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전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번 정부에서 추진하지 못할 것이라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학계에서는 정부가 CPTPP 가입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올해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2027년까지 호주와 인도네시아 등 핵심 협력 대상 5~6개국과 양자 공급망협력협정(SCPA)을 체결해 공급망 교란에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CPTPP 가입의 이득이 명확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중 갈등 관계가 계속 심화될 텐데 우리가 조금 더 숨통을 열 범퍼 역할을 할 수 있는 체제가 CPTPP”라며 “조금 늦었지만 중추적인 다층적 공급망 안정 장치들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번 통상 로드맵에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대응 전략마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통상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졌음에도 관계 부처와 민간이 소통하는 아웃리치와 네트워크 구축만 대안으로 내놓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당선 시 타격이 우려되는 전기자동차나 배터리 업계에 대한 전략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나 공화당인 트럼프 전 대통령 모두 미국우선주의를 강화할 예정인데도 유럽연합(EU)과의 연대 수준의 원론적인 내용만 담겼다. 전직 통상교섭본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과 EU에서 확산 중인 보호무역 기조를 어떻게 깨부수고 대미 무역 흑자를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내용들이 보이지 않는다”며 “세세한 전술을 다 공개할 수는 없겠지만 국민들에게 기본적인 방향과 전략은 밝히는 게 맞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FTA를 확대하고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활용해 공급망 교란에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85%(59개국)인 한국의 FTA 네트워크를 윤석열 정부 임기 내 세계 1위인 90%(77개국)까지 끌어올리고 남반구 국가들과의 경제 협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또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기능 정상화에 주도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미 대선의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를 다 상정하고 있다”면서 “올해 한국이 IPEF 의장국인 만큼 공급망 교란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FTA 시대는 끝났고 이제 와서 숫자가 85%에서 90%로 늘어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며 “WTO 같은 다자기구는 사실상 생명이 끝났는데 무엇을 주도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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