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가 이달 22일 윤석열 정부의 지난 2년 간 통상정책과 향후 3년 간의 방향성이 담긴 통상 정책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애초 산업부는 ‘신(新)통상 전략’이라는 이름의 로드맵을 발표하기로 해 기대를 모아왔습니다. 그러나 막상 베일을 벗고 보니 ‘신’통상 전략이 아닌 ‘통상 전략’이 발표된 겁니다. 실제로도 이미 발표됐던 재탕 정책이 주를 이뤘습니다.
산업부의 통상 정책 로드맵 발표는 이미 수차례 연기된 바 있습니다. 애초 2022년 9월께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2022년 8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논란이 되며 발표 시점이 연기됐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5월 발표가 유력한 시점으로 언급됐지만 4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또다시 걸림돌이 됐습니다.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하면서 현 정부의 정책이 추진력을 잃은 시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습니다. 미중 패권 경쟁은 갈수록 심해지고 한국의 통상 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 대선 정국에서도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던 와중 조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직을 사퇴하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에 오르면서 완전히 새로운 판이 짜였기 때문이죠.
정부가 발표한 통상 정책 로드맵의 주요 내용은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를 확대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향후 3년 간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85%에 달하던 기존의 FTA 네트워크를 90%까지 확대하고 세계 각국과 FTA, 경제동반자협정(EPA)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경제운동장을 넓힌다는 계획입니다.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아프리카·중남미·중앙아시아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협력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의 통상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대미(對美) 아웃리치 활동도 강화합니다. 중국과는 한중 FTA 서비스·투자 후속협상을 가속화하고 중앙·지방정부의 다층적 협력 채널을 가동하는 등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공급망 안정에 주력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내용이 담기지 않아 아쉽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특히 정부가 가장 강조한 ‘FTA 네트워크를 전세계 GDP 90%로 확대’한다는 목표는 이미 정부가 반복적으로 강조했던 내용입니다.
올해 초 산업부의 ‘2024년 업무계획’에서는 올해 신규 FTA를 체결해 FTA 네트워크를 전세계 GDP의 90%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가 발표됐습니다. 지난달 발표된 정부의 ‘역동경제 로드맵’에도 2027년까지 경제영토를 90%까지 확대해 FTA 세계1위를 달성한다는 전략이 담겼습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2년 1월 ‘2022년 대외경제정책 추진 전략’에도 이같은 내용이 담긴 바 있습니다. 산업부 관계자도 “(목표가) 달라진 건 아니고 FTA 90%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협상력이 동원돼야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발표 시점 역시나 현 시점을 선택할 만한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정부의 통상 정책 방향성에 큰 영향을 미칠 미 대선이 3개월 가량 남은 데다 아직 그 결과를 예측하기도 이른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정인교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당초 5월쯤 발표 하려 했다가 내부적으로 검토를 해보니 그래도 미국 대선 구도가 확정된 주에는 해야 하지 않나 하면서 이번주로 조정이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선 구도라는 것은 민주·공화 양당의 후보와 러닝메이트가 어떻게 확정되는가를 의미를 하는 것”이라며 “민주당 전당대회는 미국 시간으로 어제(21일) 끝나는 걸로 돼 있었기 때문에 이번 주를 중요한 시점으로 이미 한 2개월 전부터서 봐왔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