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 국내 주식시장은 역사에 기록될 장면을 여럿 연출했습니다. 역대 최대 수준으로 급락했다가 곧장 사상 최대 폭 상승으로 급반등을 하며 투자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는데요.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들은 “과거 경험을 비춰봐도 이렇게 깊은 골짜기와 빠른 반등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일시적 조정장 속에서도 미장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간 큰 베팅’을 한 투자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속절없이 추락하는 기술주에 투자하는 레버리지(기초지수의 2배 추종) 상장지수펀드(ETF)를 대량 매집하고, 미국 기업으로만 구성된 배당 ETF도 꾸준히 사들였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V자 반등을 거치며 “역시 믿을 건 미국뿐”이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그 사이 미국주식 중개에 사활을 건 신생 증권사들은 빠른 속도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고요. 물론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오는 11월 대선이 예정돼 있고 중동의 지정학적 위험, 경기침체와 금리인하를 둘러싼 각종 시나리오는 여전히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입니다. 오늘 선데이 머니카페에서는 국내는 물론 글로벌 증시가 급락했던 이달 초 블랙먼데이 기간에 투자자들은 어떤 종목을 사들였고 이에 따라 국내 금융투자 업계는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해외 증시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이달 5일 대폭락 이후 ‘고위험·고수익’인 레버리지 ETF를 대거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5일부터 16일까지 미국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를 3배 추종하는 ‘디렉시온 데일리 반도체 불 3X ETF’의 순매수액은 5억 665만 달러(약 6863억 원)로 개인 투자자 순매수 1위 종목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개인들은 같은 기간 나스닥100지수를 3배 추종하는 ‘프로셰어스 울트라프로 QQQ ETF’를 1억 2855만 달러(약 1741억 원)어치, 나스닥100지수를 1배로 추종하는 ‘인베스코 QQQ 트러스트 SRS 1 ETF’를 8747만 달러(약 1185억 원)어치 순매수했습니다. 엔비디아 일일 수익률의 2배를 추종하는 ‘그래닛셰어스 2X 롱 엔비디아 데일리 ETF’도 순매수 4위를 기록했고요.
서학개미의 이런 ‘간 큰 베팅’은 ‘공포에 사라’는 증시 격언에 충실했다는 평가입니다. 다행히 시장의 공포심리를 보여주는 시카고옵션거래소의 빅스(VIX)지수가 16일 기준 14.80까지 떨어졌고 실제 미 증시는 투자자들의 기대에 부응해 이달 5일의 대폭락을 대부분 만회했습니다. 16일 기준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5일 대비 14.40% 상승했으며 같은 기간 나스닥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도 각각 8.87%, 7.09% 올랐습니다.
현 상황에서만 보면 이들의 간 큰 베팅은 일단 적중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3일 개최된 잭슨홀 미팅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9월 금리 인하를 시사하면서 경기침체 가능성은 빠르게 낮아지는 모습입니다. 다만 중동 지역 군사 긴장감 고조, 경기 침체 가능성, 앤케리 트레이드 추가 청산 등의 변수는 여전히 불안한 요인으로 꼽힙니다. 과연 블랙먼데이에도 미국 기술주에 대거 베팅한 투자자들은 연말에도 웃을 수 있을까요. 계속해서 지켜봐야겠습니다.
올 들어 국내 투자자들은 미국 기업으로만 구성된 배당 ETF를 국내 배당 ETF보다 네 배 이상 많은 1조 원 가까이 사들였습니다. 정부가 밸류업을 통해 국내 상장사의 배당을 독려하고 있지만 이미 안정적인 주주 환원에 나서고 있는 미국 기업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TF 투자로 쏠리고 있는 것입니다.
22일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개인투자자는 미래에셋·삼성·신한·한국투자신탁운용의 미국배당다우존스 ETF를 총 9350억 원어치 순매수했습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배당다우존스 ETF’를 6609억 원어치 사들였고 신한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의 미국배당다우존스 ETF에도 각각 1219억 원, 1017억 원의 매수세가 유입됐습니다.
반면 개인은 올 들어 커버드콜 전략을 제외한 국내 배당 ETF 14개 상품에 대해서는 총 2066억 원어치를 순매수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를 두고 자산운용 업계에서는 자본 이익을 겨냥한 투자뿐 아니라 배당 관련 ETF도 미국 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전합니다. 미국배당다우존스 ETF는 ‘슈드’라고 불리는 미국의 대표 배당 ETF인 ‘SCHD ETF’의 한국판으로 ‘다우존스미국배당100 지수’를 추종하는데요. 이 지수는 배당을 10년간 지속한 미국 상장사 중 잉여 현금흐름, 자기자본이익률(ROE), 배당수익률 등 지표를 토대로 상위 100개 종목을 선별해 투자합니다.
미국 배당주는 안정적 배당을 줄 뿐 아니라 주가 상승에 따른 자본 차익을 노리는 점이 큰 장점으로 꼽힙니다. 실제 미국배당다우존스 ETF가 가장 많은 비중으로 편입하고 있는 방산기업 ‘록히드마틴’ 주가는 10년 전 대비 4배 이상 올랐습니다. 또 금융·증권 등 업종만 고배당주로 묶이는 한국과 달리 방산·바이오·식품 등 다양한 업종으로 분산투자가 가능한 것도 큰 장점으로 꼽힙니다.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밸류업 프로그램에 속도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 배당주를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들은 미국으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에 따라 미국배당 ETF를 운용하는 국내 자산운용사들 사이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기존 한국투자신탁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신한자산운용에 이어 최근엔 1위 운용사 삼성자산운용도 유사한 상품을 내놓으며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운용사들은 배당금 지급일을 다변화하면서 투자자들을 유인하고 있습니다.
서학개미에 집중해 몸집을 불려가고 있는 증권사가 있습니다. 바로 이제 갓 3년차를 맞은 신생기업 토스증권인데요. 토스증권은 미장에 몰려드는 투자자들을 향한 각종 혜택에 집중하며 올 상반기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을 제치고 해외주식점유율 2위로 올라섰습니다.
25일 증권사가 공시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토스증권은 올해 상반기 68조 7785억 원의 외화증권 위탁매매 거래 대금(매수·매도 합산)을 기록해 15.02%의 점유율을 확보했습니다. 이로써 지난해 연간 기준 4위였던 토스증권은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을 제치고 전체 증권사 중 2위를 차지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 대비 거래 대금은 두 배 이상 증가했고 벌어들인 수수료 역시 338억 원에서 650억 원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토스증권이 서학개미들을 사로잡은 대표적 요인으로는 고객 친화적 서비스가 꼽힙니다. 토스증권은 주식거래를 토스 앱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서비스로 투자자의 편의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해외 주식거래에서 가장 불편한 점으로 지목됐던 환전 역시 실시간으로 가능하도록 서비스를 설계했고요. 국내 증권사 중에서는 최초로 해외 주식 소수점 거래 서비스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해외 주식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운 토스증권과 달리 대형 증권사들은 점유율이 소폭 늘어나는 데 그치거나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1위 자리를 지켜온 키움증권의 점유율은 지난해 20.37%에서 올해 20.75%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에 가까웠고요. 삼성증권도 같은 기간 13.82%에서 14.22%로 소폭 증가에 그쳤습니다. 지난해 2위였던 미래에셋증권의 점유율은 14.97%에서 14.19%로 되레 감소해 4위로 밀렸고요. NH투자증권 역시 점유율이 3%포인트가량 줄면서 8.01%로 6위에 머물렀습니다.
이에 국내 증권사들 역시 미국주식 온라인 수수료를 무료로 내세우고 1년간 90%의 환율 우대 혜택을 주는 등 서학개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편의성을 무기로 한 신생 증권사들과 정통 국내 증권사들의 한판 승부가 점점 흥미로워지는 양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