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재정 초입 들어섰지만…의무지출 年 5.7%씩 '속수무책'[2025예산]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 2.9%로
재정준칙 준수 의지 피력 긍정적
재량 증가 보다 5배 빠른 의무지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부터 추진해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5년 예산안 및 2024-2028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상세브리핑'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제공=기재부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의 총지출 증가율을 3.2%로 잡은 것은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관리하려는 의지를 피력하기 위해서다.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재정 건전성이 급격히 나빠질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저출생·고령화 영향에 경직성 지출인 의무지출은 매년 5.7%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재량지출을 통한 경기 대응 능력이 계속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정부의 2025년도 예산안이 재정 건전성을 지키려는 의지를 내보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한국재정학회장을 지낸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27일 “학계에서도 정부 스스로 모범을 보여서 건전 재정에 대해 강한 시그널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며 “이번에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2.9%로 잡은 것만으로도 굉장히 바람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는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는 재정준칙을 도입하겠다고 강조해왔다. 관리재정수지는 총수입에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에 사회보장성 기금 수지를 차감한 값으로 실질적인 나라살림을 나타내는 수치다.


그러나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20~2022년 4.1~5.4%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재난지원금같은 긴급 재정 지출을 급격히 늘린 탓이 컸다. 이런 측면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짜면서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 목표치를 2.9%로 잡은 것은 전임 정부의 방만 재정을 돌려 세워 건전재정 궤도에 진입하려는 취지로도 해석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2023~2024년도 예산안을 짜면서 매년 20조 원이 넘는 지출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주로 재량지출이 대상이었다. 보통 지출구조조정 규모가 10조 원가량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만큼 허리띠를 졸라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올해에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3.6%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내년도 예산안을 수립하는 과정에서도 약 24조 원의 재정지출을 하면서 가까스로 내년도에 2%대의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맞출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재부 내에서도 이미 2년간 지출구조조정을 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어느 부분을 줄여야 할지 고민이 컸다는 후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023~2024년 예산을 상당 부분 구조조정했다”며 “이로 인해 올해는 구조조정 대상 모수를 상당히 키우고 각 부처에서도 자발적으로 경직성 경비 내역을 제출한 부분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GDP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큰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까지 희생했다. SOC 분야 총지출은 올해 예산보다 3.6% 줄어 정부의 12대 예산 사업 분야 중 유일하게 감소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SOC 분야가 줄어든 이유는 완료를 앞둔 사업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해서 아낀 재정은 취약계층 지원같은 민생 분야에 집중 투입했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실제로 정부는 내년도 복지 부문 예산 증가율을 4.8%로 잡았다. 저소득층·노인·장애인·한부모 등에 대한 선별복지를 강화한다는 취지다. 실제로 노인일자리는 현 103만 개에서 역대 최대 수준인 110만 개로 늘렸고 기초연금도 월 33만 4000원에서 34만 4000원으로 확대했다. 장애인 지원 예산 총량도 6.6%나 증액했다. 저출생 극복 취지에서 육아휴직급여를 월 150만 원에서 250만 원으로 올려 잡기도 했다.


문제는 이 같은 재정 지출 개편에도 의무지출 증가세를 억누르기엔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정부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8년까지 5년간 의무지출은 연평균 5.7%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기간 재량지출 증가율(1.1%)보다 5배 이상은 더 불어난다는 뜻이다. 정부에선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복지 지출 확대로 의무지출 증가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전임 정부가 키워놓은 국가채무로 국채이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것도 의무지출 확대를 부추기는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국가채무는 2018년 680조 5000억 원에서 2022년 1067조 7000억 원으로 56.9%나 늘었다.


이 때문에 의무지출을 손대지 못한다면 근본적인 재정 건전성 제고를 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구나 보편복지 확대를 선호하는 야당이 현재 국회 의석 과반수를 점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정치권 내에서 의무지출에 손을 대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의무지출 비중 증가가 재량지출 여력을 줄여 재정의 경기 대응 능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재부에 따르면 전체 재정지출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52.9%에서 2028년 57.3%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재정은 늘릴 때 늘리고 줄일 땐 줄여야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다”며 “이런 측면에서 의무지출의 경우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부터 추진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 교수도 “복지 쪽 지출도 결과적으로 손을 대야 한다”며 “페이고(pay-go) 원칙에 입각해 지출 한도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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