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범죄 놀이터'된 텔레그램

정다은 사회부 기자

최근 한 달 새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사건들 중 단연 눈길을 끈 것은 대학가 범죄들이었다. ‘인하대 딥페이크방’ ‘마약 연합동아리’ 등 음지의 범죄가 진리의 상아탑에서 행해졌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같은 범죄가 이제 중고등학생들까지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26일 서울경찰청이 7월까지 10명의 청소년을 딥페이크 제작·유통으로 입건했다고 밝힌 데 이어 27일에는 인터넷에 ‘피해 학교 명단’까지 돌며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됐다. 대통령의 작심 발언을 시작으로 전국 교육청과 경찰도 즉각 피해 사례 접수에 나섰다.


어쩌다가 미래의 꿈나무들이 이 같은 음침한 범죄에 널리 가담하게 된 것일까. 바로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 채널(단체 채팅방)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텔레그램 채널은 최대 수용 인원이 20만 명에 달해 성착취물 공유 등 ‘집단범죄’의 온상이 됐다. 범죄 행위가 발각될 위기에 처하면 채팅방 ‘폭파’ 기능을 활용해 증거를 쉽게 인멸할 수도 있다.


정보기술(IT)에 능숙한 젊은이들은 텔레그램의 특징들을 적극 활용해 ‘완전범죄’를 저지르고자 했다. 인하대 딥페이크 공유 채널에는 10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가입해 있었고 ‘마약동아리’ 일당은 텔레그램에서 만난 딜러와 마약을 거래하다가 수사가 시작된 뒤에는 마약 수사 대처법을 알려주는 채널에 가입해 휴대폰 초기화 방법 등을 공유했다.


비록 이들은 붙잡혔지만 온라인 범죄를 놓고 보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텔레그램 본사가 수사 협조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는 만큼 현재로서는 채널 잠입 정도가 범죄자 색출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2021년 성착취물 유포를 방치한 플랫폼 사업자도 처벌할 수 있는 ‘n번방 방지법’을 대응책으로 내놓았지만 정작 텔레그램은 ‘사적 채팅방’으로 분류해 아예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국가가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날 텔레그램과 핫라인을 구축하겠다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늦었지만 최소한의 면목을 세우기 위한 좋은 시작이라고 본다. 프랑스처럼 텔레그램 대표를 체포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독일과 브라질처럼 텔레그램을 앱스토어에서 삭제하는 정도의 강단은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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