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년 연속 20조 원 이상의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긴축재정 기조를 이어간다. 내년 예산안 증가율은 3.2%로 최소화하면서도 소상공인과 저소득층, 첨단산업에 대한 지원은 대폭 늘리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677조 4000억 원 규모의 2025년 예산안을 심의·의결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정부는 5년 동안 400조 원 이상의 국가채무를 늘려 정부가 일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며 “건전재정은 우리 정부의 대원칙이며 총 24조 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해 국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에 집중적으로 투입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의 방향을 △약자 복지 △경제 활력 확산 △미래를 준비하는 체질 개선 △안전한 사회 및 글로벌 중추 외교 등으로 잡았다. 분야별로 보건·복지·고용이 11조 4000억 원(4.8%) 증가한 249조 원, 연구개발(R&D)은 3조 2000억 원(11.8%) 늘어난 29조 7000억 원으로 책정됐다. 반면 사회간접자본(SOC)은 9000억 원(3.6%) 감소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기초생활수급자의 생계급여 월 수급액을 11만 8000원 올리고 기초연금도 월 1만 원가량 인상한다. 노인 일자리는 110만 개를 공급해 역대 최대 규모로 확대한다. 자영업자는 배달·택배비를 연 30만 원까지 지원해준다. 인공지능(AI)과 바이오(Bio), 반도체(Chips) 등 ‘ABC 산업’에 2차전지를 더한 ‘ABC+’ 산업 육성에 예산을 집중한다. 의료 개혁에 처음으로 국가재정 10조 원을 포함해 최소 20조 원 이상이 투입되며 농가 수입안정보험이 전면 도입된다.
다만 국가채무는 올해 1195조 8000억 원에서 내년에는 1277조 원으로 81조 2000억 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내년에 2.9%로 올해(3.6%)보다 개선된다. 이필상 서울대 특임교수는 “법인세 감면으로 (경제 활성화를 통한 세수 증대 같은)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의결된 내년 예산안은 다음 달 2일 국회에 제출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5년 예산안’ 발표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각고의 노력 끝에 2025년도 예산 총지출 증가율을 3.2%로 잡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중기재정운용계획에서 밝힌 증가율 목표치보다 1%포인트 낮은 수치였다.
이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재정 건전성이 급격히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 인식 때문이었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공개하면서 2028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50%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의무지출 증가를 억제하지 못해 한계점이 명확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가 27일 발표한 ‘2025년도 예산안’을 보면 성과가 낮거나 중복되는 사업을 구조조정해 취약 계층 지원과 미래 먹거리 지원에 투자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실제로 사회간접자본(SOC)을 빼면 12대 사업 분야 예산이 모두 증가했다. 보건·복지·고용 부문 예산은 전년보다 4.8% 늘어난 249조 원으로 확대돼 전체 예산의 36.8%를 차지했다. 연구개발(R&D) 예산은 11.8% 증액했고 산업·중소기업·에너지는 증가율이 1.1%에 불과하지만 소상공인과 첨단산업 부문에 투자를 집중해 내실을 다졌다. 소상공인 관련 예산만 해도 문재인 정부 평균(4조 1000억 원)보다 높은 5조 9000억 원으로 편성했다. 정부는 환경(4%)과 외교·통일(3.7%), 국방(3.6%) 쪽에도 예산을 늘렸다.
윤석열 정부의 임기 첫 3년 총지출 증가율은 12.1%로 문재인 정부(28.2%)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총지출 개념이 도입된 2005년 이후 역대 정부 중 임기 첫 3년간 가장 낮은 증가율이기도 하다.
기재부 예산실에서는 증가율을 낮게 잡기 위해 고심이 컸다는 후문이다. 보통 지출 구조조정 규모가 10조 원가량임을 감안하면 앞선 2년 동안 대규모 지출 삭감이 이뤄졌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강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재정 효과가 떨어지는 사업 위주로 줄였다면 충분히 잘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부는 이날 예산안과 함께 ‘2024~202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공개하면서 5년간 연평균 총지출 증가율을 3.6%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5년간 평균(8.7%)보다 크게 낮다. 이를 통해 국가채무비율을 2028년 50.5%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저출생·고령화로 의무지출이 가파르게 늘고 있어 정부 계획대로 지출을 조정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의무지출은 연금 지출이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처럼 법률로 정해져 있어 정부가 임의로 줄일 수 없는 지출을 뜻한다. 전임 정부가 키워 놓은 국가채무로 국채 이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어 의무지출을 삭감하기가 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내년 예산안에서 의무지출은 5.2% 증가한 365조 6000억 원까지 확대돼 재량지출(0.8%)보다 증가 폭이 가팔랐다. 의무지출은 올해부터 2028년까지 연평균 5.7%씩 늘어나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2.9%에서 57.3%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직성 예산인 의무지출 비중이 늘어난다는 것은 재정을 통한 경기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정부 안팎에서는 3년 연속 20조 원 이상의 지출 구조조정을 하고 예산 증가율을 최소화하면서 내수 침체에 대응하기가 어려운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R&D 등의 예산을 늘리기 위해 민자 쪽을 활용할 수 있는 SOC를 줄이는 선택을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의무지출까지 구조조정해 재량지출 여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철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복지 쪽 지출도 결과적으로 손을 대야 한다”며 “페이고(pay-go) 원칙에 입각해 지출 한도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예산안은 거대 야당 설득에 난항이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예산안에 대해 “정부의 부자 감세, 민생 외면, 미래 포기가 드러난 예산은 민주당이 책임지고 국회 심사 과정에서 수정되도록 하겠다”고 예고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기재부가 어떤 재정부터 어떻게 줄였는지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