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급'이란 이런 것…교과서 속 문화유산 한 자리에 모인다

대구 간송미술관 개관전 '여세동보' 3일 개막
간송 미술관 소장 국보·보물 40건 모두 전시
신윤복 단오풍정·김홍도 고사인물도 시작으로
간송 6·25 때도 지켜낸 훈민정음 해례본도 공개

일제의 핍박이 절정에 달했던 1930년대 후반. 한 30대 청년이 ‘우리 문화재의 정수를 보여주는 전시를 열겠다’며 근대식 사립 박물관을 세우기로 결심한다. 이미 일본이 모든 물자의 유통을 통제하던 시기였음에도 청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 대리석을 수입해 계단을 장식하고, 대만에서 화류진열장을 구해와 박물관을 꾸미기 시작한다. 그리고 1938년 7월, 드디어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박물관 ‘보화각'이 서울 성북동에 문을 연다.



간송 전형필의 생전 모습. 사진제공=간송미술문화재단


보화각을 세운 청년은 문화유산 수집가 간송 전형필(1906~1962)이다. 간송은 평생 전재산을 걸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우리 문화유산을 찾고 수집했다. 보화각을 세운 후에도 일본인들이 빼앗아 간 석불 등 규모가 큰 석조물들을 되찾아 왔고,1940년에는 1천 원에 시장에 나온 훈민정음 원본을 1만1천 원을 주고 구입해 수집품 목록에 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수집된 ‘간송 컬렉션’ 중 국보·보물로 지정된 문화유산은 42건·97점에 이르는데, 훈민정음 해례본과 신윤복의 미인도,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김홍도·신윤복으로 시작하는 전시 도입부…간송 소장 국보·보물 총출동

그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한 간송 컬렉션 국보·보물급 문화유산 전체를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역대급 전시가 오는 3일 대구에서 열린다. 대구 간송미술관은 2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개관 기념 국보·보물전 ‘여세동보-세상 함께 보배 삼아’를 9월 3일부터 12월 1일까지 개최한다고 밝혔다. 간송 미술관은 이번 전시에 큰 공을 들였다. 우선 미술관은 서울에 있는 국보와 보물급 소장품 40건 전체(석탑 2건 제외)를 대구로 옮겨왔다. 이는 지금까지 간송 미술관이 개최한 전시 중 가장 큰 규모다.


보통 전시는 가장 중요한 작품을 전시 중반 이후에 배치하며 관람객의 감정을 끌어올린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굳이 그런 기획이 필요하지 않다. ‘맛보기’라 할 수 있는 도입부에 놓이는 작품조차도 교과서 속에서나 보던 귀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김홍도의 ‘고사인물화’, 신윤복의 ‘혜원전신첩' 등 간송이 초창기에 수집한 풍속 회화가 모두 전시실1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신윤복, 단오풍정. 사진=서지혜 기자

김홍도의 ‘고사인물화’ 전시전경. 사진=서지혜 기자

홀로 관객 기다리는 미인도, 84년 만에 서울 밖 외출한 훈민정음

전시실 2에는 신윤복의 ‘미인도’가 단독 전시된다. 전시실2는 검은색 원통 형식으로 만들어졌는데, 관람객은 이곳에 들어가 홀로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미인도’ 속 여인을 만나볼 수 있다. 당초 미술관 측은 한 번에 한 사람만 전시실에 들어가 관람객이 미인도 속 여인과 독대하는 느낌을 받도록 기획했으나, 관람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돼 수용 인원을 6명으로 늘렸다.



신윤복, ‘미인도’ 전시전경. 사진=서지혜 기자.

신윤복의 ‘미인도’ 사진제공=간송미술관


전시실 3에서는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훈민정음 해례본’이 관람객을 만난다. 한글의 창제 원리와 용례를 담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간송 미술관 소장품 중에서도 가장 귀한 문화유산이다. 간송은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에도 훈민정음 해례본을 애지중지하며 지켜낸 것으로 전해진다. 미술관 역시 그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에 잠깐 전시됐던 것 외에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언제나 서울 간송 미술관에서 귀하게 보관해 왔지만 특별히 이번 전시 목록에 포함 시켰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서울 밖에서 전시되는 것은 84년 만에 처음이다.



간송미술관에 전시된 훈민정음 해례본. 사진=서지혜 기자


전시실 4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묵란화 네 점을 모은 ‘난맹첩’과 서예작품, 도자들이 자태를 뽐낸다. 국보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과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등 병(甁)류 외에도 청자기린유개향로, 청자오리형연적 등도 전시실4에서 고고한 빛을 내뿜으며 관람객을 맞이한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 사진=서지혜 기자


1월부터 상설전 시작 “리움 등과 협업 전시도 구상”


대구 간송미술관 전경.사진=간송미술문화재단


한편 전시가 열리는 대구 간송미술관은 서울 성북동에 있는 보화각과 함께 앞으로 간송의 수집품을 관리하고 보관하는 중대한 임무를 맡은 새로운 미술관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8003㎡ 규모로 건축가 최문규 연세대 교수가 설계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보화각과 함께 귀한 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할 새로운 전시 공간이 필요하다는 인식 하에 2016년 대구시와 계약을 맺고 대구간송미술관 건립을 추진해 왔다. 미술관은 대구시가 부지를 제공하는 시립미술관으로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운영한다.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과 유사한 운영 형태다.


미술관은 이번 전시가 끝난 후 내년 1월부터 대구에서 상설전을 시작할 예정이다. 서울에서는 봄과 가을에 정기 전시를 개최하고, 대구에서는 간송 소장품을 상설 전시하는 방식으로 대중과의 접점을 늘려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 관장은 “리움미술관 등 다른 주요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전시 기관과도 협업을 확대해 문화유산 애호가들에게 다채로운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1일까지. 입장료는 성인 1만 원. 어린이·청소년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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