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돌고돌아 국회 통과…의료현장 ‘갈등 불씨’ 여전

여야, 간호법 제정안 의결…28일 본회의 처리 전망
간호계 숙원이지만 현장 간호사들 우려의 목소리도
전문간호사-전담간호사 역할 분담 등 갈등 소지 남아
의협, 총파업 카드 꺼내나…간호조무사들 반대 돌아서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주민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불법과 합법의 경계에서 일하고 있던 PA(Physician Assistant·진료지원) 간호사 1만6000여 명이 제도권으로 편입될 전망이다. 여야가 지난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원포인트 법안심사 소위’를 열어 간호법 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의사 업무 일부를 담당하는 PA 간호사들의 법적 근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간호사, 의료기사 등이 소속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의 총파업을 하루 앞두고 임금 단체협약 협상이 타결되면서 파업을 철회하는 병원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보건의료계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 이견차가 컸던 PA 간호사 업무 범위를 별도의 조항으로 담지 않고 보건복지부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한 만큼 풀어야 할 과제도 많기 때문이다. 간호법이 통과되면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이겠다던 대한의사협회(의협)가 "14만 의사들이 나서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경고장을 날리면서 의정갈등이 더욱 증폭될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 되살아난 간호법, 의정갈등 장기화로 1년3개월 만에 입법 눈앞

28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이날 오전 전체회의를 열어 전날 밤 여야가 막판 합의를 이룬 간호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복지위를 통과한 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이날 오후 본회의에서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간호법은 현재 의료법 등에서 규정하고 있는 간호사 등의 업무를 떼내 독자적인 법률로 제정하자는 것이다. 간호사 업무 범위와 간호인력 수급, 양성 및 근무환경 개선 등에 관한 사항을 명문화하는 게 핵심으로 대한간호협회가 1977년 처음 추진한 이후 47년간 간호계의 숙원이었다. 작년 4월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가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던 간호법이 되살아난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의대 2000명 증원발 의정갈등 장기화가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올해 2월 의대 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대거 이탈하고 인력난이 심화하자 정부는 의사 업무의 일부를 담당하는 PA 간호사를 의료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제시했다. 의정갈등으로 인한 의료공백이 반년 넘게 이어지고 간호사들이 숙련도에 따라 응급환자 약물 투여, 수술 보조 등 일부 의사의 업무를 대신할 수 있도록 하는 시범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법적 근거가 없는 PA 간호사는 1만6000여 명 규모로 늘었다. 여야는 의료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의사 일부 업무를 대신하는 PA 간호사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사직 전공의 등 대다수 의사단체가 정부와의 대화를 보이콧하느라 협상 타이밍을 놓친 것도 간호법 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데 긍정적 요소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간호사·의료기사 등이 소속된 보건의료노조가 29일부터 전국 병원 61곳에서 동시 파업을 예고한 것도 법안이 속도를 내는데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 1만6000여 명 ‘PA 간호사’ 양지로 나올 듯…간호계 환영

여야는 간호법 제정 필요성에 공감대를 이루고도 이견차를 좁히지 못했던 핵심 쟁점으로는 PA 간호사 업무 범위가 꼽힌다. 국민의힘은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간호법에, 민주당은 시행령에 규정해야 한다고 맞섰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여야의 이런 입장을 반영해 PA 간호사 업무를 ‘의사의 일반적 지도와 위임에 근거한 업무’로 명시하고 구체적 업무 범위는 임상 경력과 교육과정 이수 등을 고려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마련했다. 민주당은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넓어 자칫 직역 갈등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의료공백 사태 해결이 시급하다는 분위기를 고려해 한발 물러선 것으로 알려졌다. 21대 국회에서 법안 통과 직전에 좌초됐던 간호법 제정안이 약 1년 3개월 만에 입법을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대한간호협회가 지난 5월 27일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제정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간호계는 최종 통과를 앞두고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전공의 공백의 대안으로 현장간호사들이 어쩔 수 없이 PA 간호사 시범사업에 떠밀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는데, 간호법 제정안이 통과되면 법적 보호장치가 마련되는 만큼 환영할 만하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간호사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보건의료노조는 "불법의료 행위에 내몰려온 PA 간호사들의 의료행위를 법으로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되는 것"이라며 "의료현장의 불법의료행위를 근절하고 의료사고 위험으로부터 환자안전을 지키기 위한 노조의 끈질긴 활동이 결실을 맺게 됐다"고 환영했다.



◇ 전문간호사-전담간호사 역할 분담 모호…우려 목소리도 높아

반면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PA 간호사 합법화는 정부가 제시한 '전문인력 중심 병원' 전환의 핵심이다. 전국 211개 수련병원에 남아있는 전공의는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않는다. 사직 전공의들의 복귀가 요원한 상황에서 전담간호사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뭉뚱그려 표현되는 PA 간호사가 현장에서는 전문간호사, 전담간호사 등으로 혼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현행 의료법은 특정 분야에서 3년 이상 임상 경력을 갖추고 전문간호사 대학원에서 석사 이상의 과정을 밟아 자격시험에 합격한 간호사를 전문간호사(APN)로 명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령에 따라 보건, 마취, 가정, 정신, 감염관리, 산업, 응급, 노인, 중환자, 호스피스, 종양, 임상, 아동 등 13개 분야의 전문간호사가 활동 중이다.



전국국립대병원 노동조합 공동투쟁 연대체 관계자들이 지난 4월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국립대병원 경영위기 책임전가 규탄, 불법의료행위 근절, 올바른 공공의료정책 추진 촉구'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

현재 PA 간호사로 근무 중인 인력은 엄밀히 전문간호사가 아닌 전담간호사를 일컫는다. 의료기관들이 숙련된 간호사 중 자체 선발해 진단서 초안 작성부터 동맥혈 처치, 수술 부위 복합 드레싱, 수술 보조 등 전공의들이 하던 업무를 맡기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자격시험을 통과하지 않아도 된다. 현장간호사들 사이에서도 간호법 제정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가 읽히는 건 이런 복합적인 상황 때문이다. 일각에선 인건비를 줄이는 데 혈안이 된 병원들이 전공의 대신 PA로 갈아탈 빌미를 마련해 줬다는 자조 섞인 반응까지 나온다.


수도권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10년 넘게 근무해 온 간호사 김모 씨는 "흉부외과 등 외과계열 PA 업무는 난이도가 높고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전공의처럼 간호사들 사이에서도 지원자가 많지 않다"며 "간호법 제정을 빌미로 전공의 채용을 줄이고 간호사들의 위험 부담과 업무량만 늘어나는 건 아닌지 걱정이 크다"고 토로했다.



◇ 의협 “대가 치르게 할 것” 총파업 돌입하나…간호조무사들도 입장 선회

시범사업 과정에서 상당수 헛점이 드러난 가운데 이견차가 컸던 PA 간호사와 의료기사 등의 업무 범위를 복지부 시행령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한 만큼 당분간 현장의 혼선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의협의 반발도 아슬아슬한 의료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위험요소로 꼽힌다.


이주열 남서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복지부가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어떻게 풀어갈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의 역할을 세분화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복지부가 바라는 대로 당장 PA 인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전담간호사들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간호계 내부에서도 찬반 의견이 나뉘는 상황에서 의사단체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의정갈등이 더 꼬이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간호법 제정 본연의 취지는 초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지역사회 중심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의정갈등을 수습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간호법이 PA 간호사를 합법화하기 위한 법안으로 둔갑한 것 같아 아쉽다"고 덧붙였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이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긴급 시국선언'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협은 간호법 제정에 오래 전부터 반대해온 만큼 법안의 최종 통과를 앞두고 '악법', '간호사 특혜법'이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날 입장문을 통해 "의사들이 띠를 두르면 이유를 불문하고 밥그릇 지키기로 폄하하고 보건의료노조가 파업하면 노동자들의 정당한 실력 행사로 미화한다"며 "지난 반년 동안 환자 곁을 떠났다고 언론과 온 사회가 마녀사냥하고 조리돌려 의사는 악마의 화신이 됐는데, 보건의료노조가 환자를 내팽개치고 떠나는 것에는 한없는 존중과 관대함만 보이는 이중적인 행태를 또 드러냈다"고 국회에 서운함을 드러냈다. 지난 26일부터 무기한 단식 투쟁에 들어간 임현택 의협 회장은 전일 국회 앞에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간호법 제정 시도를 즉각 중단하지 않으면 의료를 멈추겠다고 밝혔다. 아직 파업을 공식화하진 않았지만 총파업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앞서 의협은 오는 31일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어 의대정원 증원 저지·필수의료 패키지 대응·간호법 저지 등 총 3가지 현안에 대응할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필요성을 논의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PA 간호사 업무범위와 함께 간호법안의 쟁점 중 하나였던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에 관한 조항도 관전 포인트다. 현행법상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는 ‘특성화고 졸업자’ 또는 ‘간호조무사 학원을 나온 사람’만 가능하다. 국민의힘은 여기에 ‘그밖에 상응하는 교육 수준을 갖췄다고 인정되는 사람’이라는 문구를 추가해 특성화고등학교와 학원 뿐 아니라 전문대 출신도 간호조무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학력 기준을 완화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야당은 특성화고와 간호조무사 학원 등의 불이익을 고려해 추가 협의가 필요하다며 반대해왔다. 여야는 이번에는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제외하고 추후 사회적 논의를 거쳐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관련 논의는 일단락 됐지만 정작 당사자인 간호조무사단체는 "21대 국회에서 간호법 폐기에 앞장섰다가 22대 국회에서 입장을 선회한 것은 간호조무사 시험응시자격 학력제한 폐지가 간호법에 반영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라며 "간호조무사 시험응시자격 학력제한 폐지 없는 간호법은 결사 반대한다"고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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