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회에 퇴직연금을 관리해 주는 금융회사를 바꾸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얼마 전 후배가 대뜸 이렇게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자초지정을 물었더니 후배는 “자기네 회사는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고 있는데, 이번에 퇴직연금 관리하는 금융회사로 증권사를 한 곳 더 추가했다”고 했다.
후배는 지금까지 퇴직연금 적립금을 정기예금과 펀드에 절반씩 나눠서 운용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새로 추가된 증권사로 적립금을 옮겨서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데서 문제가 불거졌다. 회사에서는 금융회사를 변경할 사람은 이달 말까지 신청하라고 했는데 후배가 가입한 정기예금은 3개월 후에 만기가 도래한다.
퇴직연금제도에서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관리해주는 금융회사를 ‘퇴직연금사업자’라 한다. 요즘은 회사에서 복수의 퇴직연금사업자를 선정해 근로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근로자가 요청하면 퇴직연금사업자를 변경할 수도 있다. 회사에 따라 수시로 변경요청을 받아 주는 곳도 있지만, 대다수 회사는 1년에 몇 번 기간을 정해서 변경신청을 받는다.
퇴직연금사업자를 변경하려는 근로자는 가입 중인 금융상품을 전부 매도해 현금화 해야 한다. 문제는 앞서 후배의 사례에서 보듯 회사가 정한 변경신청 기간과 가입자가 보유한 금융상품 만기가 일치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회사가 정한 기한에 맞추려면 후배는 정기예금을 중도해지 해야 한다. 중도해지를 하면 가입할 때 약정한 것보다 낮은 금리를 적용해 이자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펀드와 같은 실적배당상품도 문제가 되기는 마찬가지다. 펀드를 매도했다가 다시 매수하는데 상당한 기일이 소요되는데 해외펀드의 경우 열흘 이상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이 기간 동안 해당 펀드의 자산가치가 상승하지 않는다고 어느 누가 장담하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퇴직연금사업자 변경을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같은 고민을 덜 해도 될 것 같다. 다가오는 10월 15일부터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실시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물이전제도란 퇴직연금사업자를 변경할 때 가입자의 요청에 따라 기존에 운용 중인 금융상품을 매도하지 않고 이전 받을 계좌로 실물 그대로 이전하는 제도다. 제도가 시행되면 이전하는 금융회사와 이전 받는 금융회사가 공통으로 판매하고 있는 금융상품은 원칙적으로 실물이전이 가능하다. 다만 이전 받는 금융회사에서 판매하지 않는 금융상품은 실물이전 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처럼 매도해서 현금으로 이전해야 한다.
DC형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는 자신의 퇴직계좌 적립금을 어디에 투자할지 스스로 정하고 운용성과에 책임도 져야한다. 따라서 좀더 나은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퇴직연금사업자를 찾아 나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실물이전제도의 시행으로 퇴직연금사업자 변경을 가로막던 걸림돌이 제거되면, 이 같은 근로자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