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러시아 출신의 억만장자 파벨 두로프가 온라인 성범죄 등 각종 범죄를 공모한 혐의 등으로 프랑스에서 28일(현지 시간) 기소됐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 검찰은 이날 성명을 두로프가 미성년자 성 착취 물을 조직적으로 유포하거나 마약을 밀매하는 범죄 등을 공모한 혐의, 범죄 조직의 불법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온라인 플랫폼의 관리를 공모한 혐의, 텔레그램 내 불법 행위와 관련한 프랑스 수사 당국과의 의사 소통을 거부한 혐의 등으로 예비기소 처분을 받았다고 밝혔다. 텔레그램 상에서 마약 밀매나 성 착취 물 등의 콘텐츠가 유포되고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관리하지 않아 텔레그램이 범죄의 온상이 되도록 한 상황을 범죄 단체에 대한 공모 혐의로 해석한 셈이다.
프랑스법에서 예비기소는 수사 판사가 범죄 혐의가 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지만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내리게 된다. 예비기소된 피의자는 혐의를 더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위한 수사 판사의 조사 뒤 본기소 여부가 결정된다. 본기소까지는 수개월에서 수년까지도 걸릴 수 있다.
지난 24일 프랑스 파리 외곽 르부르제 공항에서 체포됐던 두로프는 나흘 간의 조사 끝에 예비 기소가 결정됐고 보석금 500만 유로(약 74억 원)의 보석금을 내는 조건으로 석방을 허가 받았다. 단 예비기소가 된 만큼 일주일에 두 번씩 경찰서에 출석해야 하며 프랑스에서 출국도 금지됐다.
이번 기소는 소셜미디어(SNS) CEO가 제 3자가 게재한 콘텐츠로 형사 책임을 요구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파장이 일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두로프의 또 다른 예비 혐의는 프랑스 당국의 정보 요청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실제 프랑스 검찰은 수사를 개시한 이유로 당국의 요구에 대한 텔레그램의 응답 부족을 이유로 들었다. 텔레그램에 대한 초기 조사는 지난 2월 파리 검찰과 미성년자 범죄 예방 전문 경찰 기관인 오프민(Ofmin)의 주도로 시작됐다.
두로프의 프랑스 체포는 SNS 콘텐츠의 안전과 언론 자유 상의 논쟁을 재차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13년 개발된 텔레그램은 콘텐츠에 대한 검열 기준이 가볍고 암호화된 프로토콜을 제공해 여과되지 않는 다양한 정보의 출처로 자리매김해왔다. 특히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부터 러시아인들이 전쟁에 관한 뉴스를 접하는 주요 플랫폼 중 하나가 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그의 관리들이 선호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면서 러시아 정부가 진위가 확인되지 않는 뉴스를 전파하는 주요 수단이기도 하다. 텔레그램은 애초 러시아에 본사를 두고 있었지만 러시아 정부와 플랫폼 운영 문제로 충돌한 후 두바이로 본사를 옮겼다. 두로프는 당시 이 앱이 ‘지정학적 플레이어’가 아닌 ‘중립적 플랫폼’으로 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프랑스 당국의 체포에 대해서도 “숨길 것이 없다”며 “플랫폼이나 그 소유주가 플랫폼 남용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 없다”고 말했다.
한편 두로프의 체포는 프랑스와 러시아 간의 긴장도 촉발시키고 있다. 세르게이 라보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은 28일 “프랑스 정부가 텔레그램 암호화 키에 접근하기 위해 그를 체포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프랑스는 프랑스는 정부와 사법 시스템 간에는 ‘차이니즈월(정보 장벽)’이 존재하며 민감한 수사를 당국에 보고하는 매커니즘도 마련돼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