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덕 칼럼] 여우와 두루미 ‘적대적 공생’의 비법  

尹대통령·여야 대표 ‘위기의 세 남자’
韓·李회동 추진, 정치적 생존 몸부림
‘의원연봉 30%삭감’ 정치 개혁 전제
노동·연금 개혁해야 ‘지속 성장’ 가능


어느 날 여우가 두루미를 집으로 초대해 수프를 납작한 접시에 담아 내밀었다. 부리가 긴 두루미는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앙심을 품은 두루미는 여우를 식사에 초청해 길쭉한 병에 음식을 담아 내왔다. 여우는 한 입도 먹을 수 없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두루미’ 얘기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다음 달 1일 여야 대표 회담을 갖기로 합의하자 “여우와 두루미의 만남이 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두 사람이 모두 ‘민생’ 화두를 꺼냈지만 ‘동상이몽(同床異夢)’이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이 대표와의 맞짱 토론을 통해 홀로서기가 가능한 대권 주자 위상을 굳히려 하고 있다. 이 대표는 ‘먹사니즘(국민이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연출해 ‘수권 정당 리더’ 이미지를 각인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양측이 대표 회담 방식·의제 등을 놓고 샅바 싸움을 하는 이유도 노림수가 달라서다. 이 대표 측은 ‘해병대원 특검법’을 주요 의제로 다루자면서 한 대표를 향해 제3자 추천 방식의 해병대원 특검 법안을 발의하라고 요구했다. 한 대표의 주장대로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방식의 특검 법안을 추진할 경우 여권 분열을 조장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대법원장이 추천한 특검이 기소한 뒤 법원이 유죄 여부를 판단할 경우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난다”면서 특검법을 둘러싼 여권 내홍 심화를 우려했다. 한 대표가 당초 전례 없는 ‘대표 회담 TV 생중계’를 제안했던 것도 나름의 셈법이 있어서다. 금융투자소득세 등을 놓고 ‘토론 배틀’에 나선 정치인 한동훈을 부각시키는 한편 이 대표의 모호한 논리를 노출시키려는 전략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서로를 ‘적’으로 규정했던 두 사람이 ‘파트너’로 머리를 맞대기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두 사람에게 올해 하반기는 정치생명이 걸린 중대 시기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한국을 움직이는 세 남자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4·10 총선에서 여당이 ‘백팔번뇌’로 불리는 108석을 얻어 참패한 뒤 윤석열 대통령은 레임덕 위기뿐 아니라 야권의 탄핵 공세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네 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는 단 한 건이라도 대법원에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10월쯤 선거법 위반 등 두 건에 대한 1심 선고가 이뤄질 예정이어서 이 대표의 심경은 초조할 수밖에 없다. 여유가 없고 불안하기는 한 대표도 비슷한 처지다. 4월 총선과 7·23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갈등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공공연히 알려졌기 때문이다. 임기가 절반 넘게 남은 대통령과의 앙금을 해소하지 못한 여권 2인자는 지지율을 높여야만 대권 주자로 살아남을 수 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한 대표는 여론을 의식하며 ‘민심’을 거론하는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이다.


두 대표의 회동 추진은 정치적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적대적 공생 관계’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윤 대통령과 달리 두 대표가 ‘증원 유예’라는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두 사람은 정쟁 자제 및 일부 민생 법안 처리 등에서 타협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전 국민에게 25만 원씩 지원’을 주장하는 이 대표 측과 ‘선별적 지원론’을 꺼낸 한 대표 측이 ‘취약 계층 현금 지원’으로 접점을 찾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하지만 두 사람이 공생하려면 비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경제·민생을 망쳐온 정치를 개조하는 대혁명, 정치 개혁에 함께 나서는 것이다. 그 첫걸음으로 ‘국회의원 특권 폐지’를 추진해야 국민들의 공감과 박수를 이끌어낼 수 있다. 현재 1억 5690만 원에 이르는 국회의원 연봉을 30%가량 삭감하고 ‘의원 무노동 무임금’까지 약속한다면 개혁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한 대표와 야당도 그전에 삭감안을 제기한 적이 있다. 또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고루 배분하는 선거 개혁을 통해 ‘견제와 균형’을 살려내야 ‘제왕적 대통령’뿐 아니라 ‘제왕적 의회’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 여야가 이어 노동·연금·세제 개혁 등을 놓고 정책·비전 경쟁을 해야 ‘지속 가능한 성장(한동훈)’과 ‘성장 회복(이재명)’의 공통분모인 ‘성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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